한국 상고사를 다루시는 분들 께서;는 필자의 논지를 설명 하기에 앞서, 그 뒷 배경을 간단히 전해 드림니다.
다음은 봄에 얼렸던 입니다.
한무제가 조선을 친입 하여 사마천이 조선 열전을 편찬 했고, 그 다음 후한 말기에 진수(陳壽, 233-297년)가 옛적 뭔 낙원 땅(遼寧)이라 하던 남만주 땅에 들어가 현지 답사를 하고 삼국지 위지 30 (三國志 魏書三十)를 편찬 했다 . 이유가 뚜렸치는 않으나 현존하는 삼국지에 실린 글자 수의 반 이상이 동진(東晉) 말 -북송(北宋)의 배송지(裴松之, 372년-451년)가 주(注)를 단 글자다. 특히 열전에는 보인다 . 그러나 이 두 사서가 동북아시아 상고사 연구에 가장 중요한 사료다.
정치적인 이해 관계에서 모든 중국 사서는 시대에 따라 상반된 비판을 많이 당했다. 바꾸려면 문젯점의 뿌리 부터 철저히 바꾸어야 했다. 하여 글자 만드는 방법(六書) 과 각종 字典에 손을 대었고, 고전중의 고전인 詩經, 尙書, 春秋左傳에 실린 글자도 바꾸었다. 후한서 유림열전에는 여러 학자들이 다투어 옛 문헌을 바꾸었다고 했다. 특히 가규 (賈逵, 30년-101년)가 반고와 함께 궁중 도서의 교정과 후한의 역사 정리를 맡았다고 한다. 그는 어용학자로 경전의 많은 글자들을 바꾸었다 . 후한서와 삼국지 가규열전을 보면 그는 옛 경전에 실린 백여 만자(百餘萬言)를 바꾸어 어마어마한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 하여 논왈 “그 후부터 귀현 세주가 모두 이를 의론하며 공부 하고 있다. 아! 슬프다”하는 문구가 있다. 모시정의 서문, 안씨가훈 서증, 강희자전의 많은 글자 설명에 붙은 고증(考證) 따위가 글자를 바꾸었다는 증거다. 시대를 따라 변해온 한자(漢字)에는 동양 역사가 숨어 있다.
예를 하나 든다: 공자님의 사위 공야장(公冶長)이 오환(烏桓, 烏丸)의 말을 이해 했다는 오어(烏語)자를 비슷해 보이는 새조자 조어(鳥語)로 바꾸었다. 북쪽 사람들이 볼때는 너무 속들여다 보이는 글자 작난이라 생각 되여서 였던가, 같은 새란 뜻의 새 금자로 바꾸어 조어라 하던 글자를 금어(禽語)로 바꾸어 공자님 사위가 새소리(禽語) 까지도 해석했다고 전해 왔다 . 당 현종은 공자님 사위에게 거백(莒伯)의 칭호를 주었고, 북송의 진종은 고밀후(高密侯), 남족이 집권한 후 명나라 때에느 그를 다시 선현 공야자(先賢公冶子)라 했다. 중원에서는 이렇게 사상교육의 뿌리가 되는 역사부터 바꾸어 왔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문의 글자를 바꾸어야만 했다. 이래도 “1+1 =2”라는 원칙을 지켜 한국 상고사를 복원해야 한다는 실증 사학계의 의견을 듣고 싶다.
끝
March 24, 2017, revided August 19, 2017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