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전(高句麗傳)-본론:남만주의역사-11 끝:
금조선(今朝鮮)의 종말:
앞에서는 <급총주서가 발굴된 해에 숙신씨가 효시(肅慎來獻楛矢石砮)를 바쳤다. 고구려 제13대 서천왕(西川王)이 재위 (270년~292년) 하던 때다. 숙신씨가 반발하여 동생 달가 (達賈)를 시켜 숙신씨의 본거지인 단로성(檀盧城)을 점령했다. 졸본부여가 있던 지역을 금조선(今朝鮮)이라 했다 . 이 곳이 친위왜왕비미호 (親魏倭王卑彌呼)가 살던 곳이다 . 이를 통전에는 한말 공손도 덕택에 위진 시대에 그 땅을 얻었다고 했다 . 삼국의 뒤를 이은 서진 역사책(晉書)에 나어는 조선(朝鮮)은 발해만 서쪽 갈석산 일대를 의미 했다. 오호십육국시대 전연(前燕)의 제1대(초대) 황제가 된 모용황 (慕容皝, 297년 ~ 348년)을 조선공(朝鮮公)으로 봉했다 . 모용씨 (慕容氏)의 어원은 부여란 이름이 와전(冠步搖冠; bù yáo)되여 나타난 사음자다 .진서(晉書)에는 선비족의 풍속에서 나온 음이 와전 되여 모용(慕容)이 되였다 하나, 삼국지에는 선비대인 모용 (慕容)이 있다 . 자서 역명 (字書釋名)에는 귀인의 머리 장시품을 보요步摇했다. 백낙천(白居易, 樂天; 772년 -846년)이 읊은 장편 서사시장한가(長恨歌)에는 “雲鬢花顏金步搖, 芙蓉帳暖度春宵”라 했다 . 모용씨(慕容 氏)는 부여족을 뜻하던 부여지국 (不與之國, 浮游作矢,古者夷牟初作矢)의 후손이다.
문맥 전체를 살펴보면, 진수가 말한 금조선(今朝鮮)은 졸본부여 라고 하던 곳이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나오는 단로성(檀盧城)이 있던 곳이다.
이 성을 고구려 왕자 달가 (達賈)가280년(서천왕 11) 에 정벌 했다 .
필자는 목표로 세웠던 를 출발점에서 부터 종착역 까지 고조선의 후예들이 어떻게 흘러 왔는가를 시대와 장소에 따라나타났던 사건과 인물들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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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19, 2017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