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 본기 (晉書 帝紀)-4:
동왜(東倭)는 어디있었나?
중국문헌에는 동왜(東倭)란 문구가, 사마중달의 업적을 기록한 진서 제기 일 (晉書•帝紀一)에 단 한번 나온다 . 요동(遼東)의 서쪽을 요서(遼西)라 부르듯이 동왜(東倭)의 서쪽에 왜(倭)라고 부르던 부족이 있었다는 뜻이 분명 하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동왜(東倭)에서 바쳤다는 공물은 개선장군으로 돌아온 사마중달이 양평성에서 갖고온 조선(朝鮮)의 귀한 조각물이 뚜렸하다. 공손연이 숨어 있던 조선(朝鮮)의 옛 수도 양평성에서 온 사신이 갖고온 선물을 동왜(東倭)에서 왔다고 했다. 다른 삼한의 후예라고 볼수있는 사절단은 요동만 북쪽 수계라고 판정되는 약수 이남의 선비왕과 동왜(東倭) 뿐이다. 동왜(東倭)를 일본열도라고 풀이 할수는 없다.
사마중달이 출전한 시기인 237년(青龍五年)에 사마씨의 영향으로 조위는 경초력(景初曆)을 사용하기 시작 했다. 년중(年中)에 연호 (年號)와 달력을 바꾸어 사서 풀이에 혼란이 온다 . 사마염이 265년에 서진을 선포하고는 태시력(泰始曆) 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그해를 태시원년(泰始元年,265年)으로 했다. 그 후에도 남북조 시대에는 경초력(景初曆)이후 약간의 시차를 교정하여 이름을 “元嘉曆, 玄始曆, 大明曆”라고 불렀다.
조예는239년에35세의 나이에 요절하였다. 그의 사후가 없어, 어린 양자인 제왕조방 (齊王 曹芳)이 황위를 계승하였고, 실권은 사마씨가 장악하게 되여 서진(晉)왕조의 성립을 기초를 완성하게 된다. 사마중달이237년에 출정 하여240년 정월(魏正始元年)에 만여명의 기술자와 값진 물품 1,000개를 자져왔다.
.
지난주에 올린 “남제서(南齊書)에 나오는 조선태수(朝鮮太守)”에서 공손도
(公孫度)부터 공손연에 이르는 기간 동안 자리 잡았던 곳을 “玄菟, 遼東太守, 襄平城, 冀州刺史,分割遼東, 營州刺史” 등 여러글자로 은미하게 표현 했다고 논증 했다. 이 지역을 방현령(晉書)은 한 예가 사는 조선 “撫定朝鮮,奄征韓、貊”이라고 했다. 옛적에 조선 사람들인 예맥족이 살던 땅이다. 반고(漢書 魏豹田儋韓王信傳)
는 한(汗;馯, 韓) 인들이 사는 땅 “撫定韓地”이라 했고, 사마천은 옛적부터 (산동반도 북쪽에서 남만주에 이르는) 땅을 한인이 살던 옛 땅“欲以撫定韓故地” 이라고 했다.
산해경에는 고조선 사람들이 살던 곳을 예인의 나라 또는 맥국(貊國)이라고도 했다 . 그 지역에 고조선 사람들이 살았다. 산서성 해지에서 분수(汾水)를 따라 올라가는 연안 계곡, 아니면 발해만 서남쪽 연안이다. 수서에는 옛적 창해군이 있던 곳을 대륙 백제가 아닌 이라 했다 . 이러한 중국사료를 은미하게 풀이하여 제탕 삼탕한 중국측 사서를 그대로 받아 드려 삼국사기와 유사(三國史記, 三國遺事) 에는 맥국(貊國)이란 나라가 한반도에 있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동왜(東倭)에 비미호 (倭國女王俾彌呼)가 살았다.
진서(晉書)에 나오는 모든 왜(倭)자와 삼국지 오ㅔ인전을 종합 검토해 보면, 왜국 여왕 비미호 (倭國女王俾彌呼)가 살았던 곳이 동왜(東倭)가 분명 하다. 커다란 비밀이 불렸다. 이를 간략히 설명 하면:
삼국지와 진서에서 다룬 시기에는 에서 나라를 세우던 시절이다. 이러한 옛적 상황을 고려치 못하고 오늘의 한반도 끝과 일본 열도로 인시하여 진수의 삼국지에는 왜국여왕 비미호 (倭國女王俾彌呼)가 있고, 삼국사기 신라에도 왜에서 사신을 보냈던 사람이 비미호(卑彌呼)라고 했다. 그러나 장소를 그릇 판단하여 또 다시 그릇된 역사 기록을 남겨간다.
진서 본기에는 첫쩨로 (晉書 帝紀第一) 사마의(司馬懿, 179년 ~ 251년)를
조위와 처음으로 국교를 텄던 비미호 (倭國女王俾彌呼)가 조위의 마지막 황제인 제 3대 소황제(少皇帝; 239년-254년)에게도 방물을 바쳤다.
진서(晉書)에는 왜(倭)자가 3번 실렸다. 첫 번쩨는 사마중달이 공손연을 토벌한 시기, 두번쩨는 그의 아들 사마염(司馬炎;제위, 265년-290년)이 서진의 첫 황제가 된 265년 행사에 왜인(倭人)이 방물을 보냈다. 세번쩨는 열전에 처음으로 중원과 국교를 텄던 비미호 (倭國女王俾彌呼)를 설명하면서기록 했다 . 삼국지에 (진수가 실수로 남겼던) 한인 한국 (汗人, 汗國)이란 글자를 진서(晉書)에는 먼 거리에 있다고 과장 했다 . 사마중달이 요양에 숨은 공손연을 치러 가는 시간이 100일 이라 했스니 수도를 강남으로 옮긴 동진(東晉; 317년- 420년)의 수도 (建康, 南京市)에서 만주 까지 가는 시간이 200일 걸린다고 좋게 풀이 할수도 있다.
진서 본기 (晉書 帝紀)에서도 동진시기를 다룬 내용에는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백제(百濟)가 사마씨가 강남으로 쫓겨간 이후가 되는 동진 시대에 여러번 나온다.
방현령보다 2세대 후에 서안 사람 두우(西安人, 杜佑, 735년 ~ 812년)가 편찬한 통전(通典)에는 삼국지에 나타난 오림이 낙랑(吳林以樂浪)사건이 실렸다 .
앞서 8월 주순에 올린 “산서성 역사 진세가(晉世家):”에서 두(杜)자가 단군조선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설명 했다.
진무제 함녕 중에 (晉武帝咸寧中; 275年—280年四月) 마한왕이 서진 황실을 찾았다지만 진서(晉書)에는 오림이 낙랑 사건이 없다. 한국이나 일본 역사서에는 이때에 서진( 西晉)과 교류 했다는 기록이 없다. 여러 나라와 같이287년에 마한 (馬韓)이 사신을 보냈다고 은미하게 기록 했다. 이 사건에 나오는 마한왕(馬韓王)은 대륙 백제가 분명 하다.
끝, 다음에 계속
October 11, 2017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