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해경(山海經)의 시작은 산하 구릉을 그려 놓은 약도 산하경(山河經)와 그를 설명한 글자라고 밝혔다. 치수사업을 하던 우가 백익에게 부탁 하여 상해경을 만들었다[1].
산해경(山海經) 두 곳에 나타난 조선은 시대와 장소가 다르다. 천독(天毒)이란 글자가 실린 해내경(海內經)은 주로 요순 시대에 홍수의 피해가 심했던 지역을 다루었다. 그 편에 몇줄 첨가한 흔적이 보인다. 처음 요 임금 때에 12주를 우와 백익이 치수 사업을 마치고 9주로 만들었다. 해내경에는 9주 이름을 밝혔다[2]. 그 뒤에 또 다른 주를 더하여 <남방이란 지역을 첨가 하여 그 곳에 말이 서로 통하지 않는 흑인이 산다. 창오지구(南方蒼梧之丘)가 있다. 그곳에 순임금이 뭍혔다>고 했다[3].
사마천이 <순의 장지에는 의문 스러운 여러 설이 있다. 설이 구구하다 하는 뜻에서 구의(九疑)라 한 표현을 뫼산자 변을 더하여 “九嶷山”이라 >했다. 이 문장은 사기 이후에 첨가 했다. 순임금의 장지에 관해서는 의문이 많다지만, 사료를 종합해 보면 그는 함곡관 서쪽 위수-분수 분지 제빙(諸馮)에서 탄생하여 숙진(息慎) 현도씨 (玄都氏)와 이웃하여 그 곳 력산(歷山)에서 농사도 짖고 살다가, 융우(禹)에게 양위하고 그 곳 명조 (鳴條)에서 죽었다[4]. 해지연안에 있던 평양 (平陽)을 안읍 (安邑) 또는 명조라고 했다[5].
첨가한 사람은 한 문장을 넣게 마련이다. 한 문장에 천독(天毒)이란 두 글자 만을 넣을 수는 없다. 해내경(海內經)은 치수 사업을 하던 시절에 작성 되었다. 해내경에 실렸던 창오(蒼梧)란 글자가 해외서경과 동경(海外西經, 海外東經)에도 나타 난다[6]. 같은 지역에 하후개(夏后啟)가 나타났다. 모두 다 함곡관 서쪽을 설명 했다[7].
시대와 장소가 밝혀 졌다. 천독(天毒)은 요순 시대 사람을 지칭한 글자다.
항간에는 천독을 불교 전래 이후에 나타난 “천독身毒, 천축天竺”과 같은 뜻이라고 한다. 사람이 옛적 인도를 뜻한 지역으로 변했다. 문장을 바꾸지 못하여 글자 풀이를 바꾸었다. 그러니 앞뒤가 틀린 설명을 계속 한다.
천독(天毒)은 천시애(天𣫴):
처음에는 “𣫴;圭,母, xié/시애/쉐”라고 적힌 글자를 뒤에 어느누가 모양이 비슷한 독(毒)자로 바꾸었다. 본 글자는 <규(圭)를 든 유목민(母)의 지도자을 뜻한 상형 글자>다. 하늘로 부터 규를 소유할 권한을 위임 받은 단군을 뜻한 글자다.
시애 (xié xī xí/해, 解, 解批, 巂,𦋅,𡸔,𣫴)라고 부르는 여러 성씨가 산서성 해지 연안에서 나왔다[8]. 산해경에 북해지우(北海之隅)라 한 곳은 산서성 해지(解池) 북쪽 연안이란 뜻이다. 이를 집운에서는 “하동지음; 東海之邑”이라, 즉 하동 해지 (解/海池)옆에 있는 마을 이라고 했다. 천시애 (天𣫴)가 살던 지역에 있던 호수라 하여 염지(鹽池) 라는 보통 명사를 쓰지 않고 고유명사인 시애지(xié chi, 解池,해지) 라 했다 . 글자 “𣫴, xié/시애/쉐”와 같은 발음의 글자가 해지 연안에 살았던 휴자(攜, xié 子)다. 그에게 순임금이 양위를 하고 돌아 오지 않았다. 장자 “왕의 직위를 이양 했다는 양왕편, 여씨춘주, 고사전”등 많은 고전에 실려 있다 .
본래 천시애(天𣫴)를 천독(天毒)이라고 바꾼 시기는 제터 단자 단군(壇君)을 박달나무 단(檀)자로 바꾼 시기와 일치 해야 한다. 서주 초기에 바꾸었다. 상서 미자편에 <하늘 나라(天毒)에서 재앙을 내렸다(降災), 즉 천벌을 받았다는 문구를 하늘이 독한 마음을 품고 재앙을 내려>라고 풀이 한다[9].
천독은 천시애(天攜, xié 子)로 이를 집권자는 천자(天子), 제사장은 “天君, 禮君”이라고 했다. 해지연안에 살던 사람들이 만주로 옮겨 왔다. 그들은 전과 같이 하늘에 제사를 드렸다. 그들의 제천 의식이 삼국지 동이전에 여러 모로 실렸다. 한전에는 천시애 (天𣫴)를 “천신께 天神 제사를 드리는 사람을 천군 天君”이라고 실렸다[10].
어렴풋할 외, 가까이할 외( 偎;亻,畏wēi)자는 사랑이란 뜻이 있는 나라이름 (偎:愛也,亦國名)이다. 물가에 사는 잠길 외, 더러워질 외, 빠질 외, 흐릴 위(渨 ) 와 같은 글자로 예맥( 渨. 《博雅》穢也)이라고 했다. 외인 (偎人)이란 글자는 한예왈 외왜(汙穢曰渨涹), 모예위건(冒禮為諐)는 문구도 있다[11]. 위약에, 외자는 몽비의 자세(偎以蒙鄙之姿)라 했다. 시경에는 몽고(蒙古)란 이름에 쓰는 어두울 몽 (蒙)자가 많이 실렸다.
강희자전에는 열자 황제편(列子·黃帝篇)을 인용 하여 외(偎)자를 선성(僊聖, 仙聖) 의 신하로 지역은 발해만 서안 고사산(列姑射山)국과 관련 시겨 설명 했다[12].
장자 내장편에는고사산(姑射山)이 있던 곳의 시대와 장소를 밝혔다.요 임금이 해지연안을 뜻한 해내(海內, 河東)를 다스릴 때에 분수연안 (汾水之陽)에 신인이 살던 곳(神人居)이라고 했다[13].
이를 종합해 보면 문장 끝에 붙은 “외인 偎人”이란 문구는 예맥족이 살던 곳의 지도자다. 태강원년 (太康元年, 279년)에 급총죽간 (汲冢竹簡)이 발굴된 이후 문헌에 나오는 “홍익인간 弘益人間”을 뜻한 문구가 “偎人愛人”이란 문구로 실렸다. 산서성 해지 연안에 살던 사람들이 발해만 서쪽 지역으로 옮겨와 살았다.
끝
September 15, 2018
[1]. 太平御覽 會稽東越諸山: 禹乃齋,登石簣山,鑿龍門,通伊闕,遂周行天下,使伯益記之,名為《山海經》。
吳越春秋越王無余外傳:遂巡行四瀆。與益、夔共謀,行到名山大澤,召其神而問之山川脈理、金玉所有、
鳥獸昆蟲之類,及八方之民俗、殊國異域、土地里數:使益疏而記之,故名之曰「山海經」
[2].海內經: 有九丘,以水絡之:名曰陶唐之丘、有叔得之丘、孟盈之丘、昆吾之丘、黑白之丘、赤望之丘、參衛之丘、
武夫之丘、神民之丘。南方有贛巨人,人面長臂,黑身有毛,反踵,見人笑亦笑,唇蔽其面,因即逃也
南方蒼梧之丘, 蒼梧之淵,其中有九嶷山,舜之所葬,在長沙零陵界中.
[3].海內經: 南方有贛巨人,人面長臂,黑身有毛,反踵,見人笑亦笑,唇蔽其面,因即逃也
南方蒼梧之丘, 蒼梧之淵,其中有九嶷山,舜之所葬,在長沙零陵界中.
[4].山海經: 中山經: 東十里,曰歷山,其木多槐,其陽多玉.又東北七十里,曰歷石之山,其木多荊芑,其陽多黃金,
其陰多砥石。有獸焉,其狀如狸,而白首虎爪,名曰梁渠,見則其國有大兵. 사기:太史公曰:舜葬九疑. 虞舜生東夷. 舜生於諸馮. 夏本紀:湯修德,諸侯皆歸湯,湯遂率兵以伐夏桀。桀走鳴條,遂放而死。尚書 大禹謨:益贊于禹曰:
「惟德動天,無遠弗屆。滿招損,謙受益,時乃天道。帝初于歷山,往于田,日號泣于旻天,于父母,負罪引慝. 《書》:舜耕歷山. 舜生三十徵庸,三十在位。五十載,陟方乃死. 水經注 河水: 故《命歷序》曰:《河圖》,
帝王之階,圖載江河、山川、州界之分野。後堯壇于河,受《龍圖》,作《握河記》。逮虞舜、夏、商,咸亦受焉。李尤《盟津銘》:洋洋河水,朝宗于海,徑自中州,《龍圖》所在.《秦世家》以垣為蒲反。然則本非蒲也。皇甫謐曰:舜所都也。或言蒲坂,或言平陽及潘者也。今城中有舜廟.郡南有歷山。謂之歷觀,舜所耕處也。有舜井,媯、汭二水出焉。南曰媯水,北曰汭水,西逕歷山下,上有舜廟。周處《風土記》曰:舊說,舜葬上虞。又《記》云:耕于歷山.《括地志》
蒲州河東縣雷首山,一名中條,一名歷山,舜耕處。《廣輿記》蒲州今屬平陽府.汾水:今平陽郡治。汾水又南逕平陽縣故城東,晉大夫趙鼂之故邑也。應劭曰:縣在平河之陽,堯、舜竝都之也。《竹書紀年》:晉烈公元年,韓武子都平陽。漢昭帝封度遼將軍范明友為侯國,王莽之香平也。魏立平陽郡,治此矣。水側有堯廟,廟前有碑。《史記音義》曰:鞏縣有鄩谷水者也。黃帝東巡河,過洛,脩壇沈璧,受《龍圖》于河,《龜書》于洛,赤文緑字。堯帝又脩壇河、洛,擇良即沈,榮光出河,休氣四塞,白雲起,迴風逝,赤文緑色,廣袤九尺,負理平上,有列星之分,七政之度。《帝王録》記興亡之數,以授之堯。又東沈書于日稷,赤光起,玄龜負書背甲,赤文成字,遂禪於舜。舜又習堯禮,沈書於日稷,赤光起,玄龜負書至於稷下,榮光休至,黃龍卷甲,舒圖壇畔,赤文緑錯以授舜。舜以禪禹. 孟子 離婁下: 孟子曰:「舜生於諸馮,遷於負夏,
卒於鳴條,東夷之人也。文王生於岐周,卒於畢郢,西夷之人也。地之相去也,千有餘里
[5].竹書紀年 帝舜有虞氏: 帝即位,居冀。作《大韶之樂》二十五年,息慎氏來朝貢弓矢. 三十年,葬后育于渭. 玄都氏來朝,貢寶玉.四十九年,帝居于鳴條. 五十年,帝陟. 地名。在今山西省安邑縣的鳴條岡,為成湯敗桀的地方.
[6].海內經: 南方蒼梧之丘,蒼梧之淵,其中有九嶷山,舜之所葬,在長沙零陵界中.
[7]. 海外西經: 大樂之野,夏后啟於此儛九代;乘兩龍,雲蓋三層. 身國在夏后啟北,一首而三身.
海內南經: 夏后啟之臣曰孟涂,是司神于巴,人請訟于孟涂之所,其衣有血者乃執之,是請生。
[8].解:曉也,又解廌仁獸似牛一角亦姓自唐叔虞食邑於解今解縣也,晉有解狐解楊出鴈門又虜複姓魏書有解批氏
[9]. 尚書 商書 微子: 父師若曰:「王子!天毒降災荒殷邦,方興沈酗于酒,乃罔畏畏,咈其耇長舊有位人。
[10]. 三國志 魏書三十 韓傳: 信鬼神,國邑各立一人主祭天神,名之天君。又諸國各有別邑。名之為蘇塗。
立大木,縣鈴鼓,事鬼神。諸亡逃至其中,皆不還之,好作賊。其立蘇塗之義,有似浮屠,
[11].書叙指南: 汙穢曰渨涹劉向九歎又曰冒禮為諐. 《魏略》曰: 偎以蒙鄙之姿,得睹希世之寶
[12]. 偎:《廣韻》烏恢切 《列子·黃帝篇》不偎不愛,僊聖爲之臣。《字林》偎,仿佛見,不寡也。
又《山海經》北海有國,名曰朝鮮天毒,其人水居,偎人愛人。《註》偎亦愛也。列子 黃帝:列姑射山在海河洲中,山上有神人焉,吸風飲露,不食五穀;心如淵泉,形如處女,不偎不愛,仙聖為之臣;不畏不怒,愿愨為之使;不施不惠
[13]. 莊子 逍遙遊: 藐姑射之山,有神人居焉 堯治天下之民,平海內之政,往見四子藐姑射之山,汾水之陽,」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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