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의 세로운 고찰. 일본(日本)이란 이름자는 수당 (隋唐)전환기에 한해의 동남쪽 섬에 있던 열도 백제를 뜻하던 왜(倭)에서 나왔다. 진수가 삼국지(鮮卑傳)에서 한(汗人, 汗國)자 동이전에는 왜(倭人,倭國)자로 기록 했다. 이를 후한서에 그대로 인용하였다. 왜자의 출원지는 발해만 서남쪽, 창해군(滄海之郡)이 나타났던 곳이다. 양자방언에 조선(朝鮮)이라한 지역의 해안이다. 임나(任那)란 글자가 그 곳을 정벌했던 광개토대왕 비문에 나타난“自倭*背急追至任那加羅*從拔城, 城卽歸服, 安羅人*戍兵. 拔新羅城, 鹽*城, 倭寇大潰*, 城內” 문구에 있다. 이와 같은 사료를 근거로 “任那加羅”란 지명이 한반도 남쪽에 있었다는 일본 사람들의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을 세로이 설명 한다. 필자는 광개토대왕의 격전지가 남만주에서 중원에 이르는 지역에 국한 되어 한반도에…..
왕공대인(王公大人)에 숨은 뜻-2: 왕건의 고려(高麗)는 현토 땅에서: 왕공대인의 후손에서 여러 성씨가 나왔다고 논증 했다. 만주에 등장했던 는 논증을 보충 설명한다. 공손도를 사위로 맞아드렸다는 일차 사료가 삼국지 부여전에 나타난 처이종녀(妻以宗女)란 문구다. 이를 뒤바꾸어 공손도의 딸을 부여왕에게 출가 시켰다고들 풀이 한다. 공손연은 해모수(解慕漱)의 혈통이다. 동한의 왕부(王符:約85年~約163年)가 편술한 잠부론(潛夫論 志氏姓)에 성씨의 기원을 정리 했다[. 潛夫論 志氏姓:昔者聖王觀象於乾坤,考度於神明,探命曆之去就,省群后之德業,而賜姓命氏,因彰德功。傳稱氏之徹官百,王公之子第千世能聽其官者,而物賜之姓,是謂百姓。姓有徹品,於王謂之千品。昔堯賜契姓,姬;賜禹姓姒,氏曰有夏;伯夷為姜,氏曰有呂。下及三代,官有世功,則有官族,邑亦如之.所謂國也;王氏、侯氏、王孫、公孫,所謂爵也;司馬、司徒、中行、下軍,所謂官也;伯有、孟孫、子服、叔子,所謂字也]: 왕공의 자제들은 천세대가 지나도 (선조의) 덕업이나 관직을 알고 있서 성으로 삼았다. 왕에도 계층이 많았다. 그들이 살던 지역 이름의 익(號邑謚), 직업으로 하던 일(所謂事也), 호(所謂號也), 자(所謂字也), 살던 곳(所謂居也) 등…..
왕공대인(王公大人)에 숨은 뜻-1, 보충 수정본: 왕공(王公)이란 글자는 경전문헌(經典文獻)에서 부터 각종 문헌 여러 곳에 많이 나오지만 시대와 장소를 밝히기 어렵다. 선진 문헌에 대인(大人) 이란 명사는 를 훈역한 글자다. 논어(論語 季氏)에 <군자는 세가지를 두려워 한다. 천명(天命)을 두려워하고,대인(大人)즉 지도자를 두려워하고,성인의 말씀(聖人之言)을 두려뤄 한다. 옛적에 지도자를 “아버이, 아바이”라 하던 명사의 뜻 글자다. 여러 곳에 실려 어느시대 어떤 사람을 뜻했는지를 확인 할수 없다[. 論語 季氏:孔子曰:「君子有三畏:畏天命,畏大人,畏聖人之言。小人不知天命而不畏也,狎大人,侮聖人之言。」 荀子 成相:堯不德,舜不辭,妻以二女任以事。大人哉舜,南面而立萬物備。舜授禹,以天下,尚得推賢不失序。外不避仇,內不阿親,賢者予。新書匈奴:夫胡大人難親也,若上於胡嬰兒及貴人子好可愛者,上必召幸大數十人,為此繡衣好閑,且出則從,居則更侍。揚子法言 學行卷第一:曰:「大人之學也為道,小人之學也為利。子為道乎?為利乎?」或曰:「耕不獲,獵不饗,耕獵乎?」曰:「耕道而得道,獵德而得德,是獲、饗已.]. 군서치요에는 연나라사람 서요(徐樂,燕郡無終人)가 황제에게 올린 글을 인용하여 자신은 왕공대인명족의 후손(王公大人名族之後)도 아니요, 공자 증자 묵자 같은 현인이나, 기돈과…..
왕공대인(王公大人)의 뜻: 선진 문헌에 대인 이란 명사는 여러 곳에 실려 어느시대 어떤 사람을 뜻했는지를 확이 할수가 없다[. 論語 季氏:孔子曰:「君子有三畏:畏天命,畏大人,畏聖人之言。小人不知天命而不畏也,狎大人,侮聖人之言。」 荀子 成相:堯不德,舜不辭,妻以二女任以事。大人哉舜,南面而立萬物備。舜授禹,以天下,尚得推賢不失序。外不避仇,內不阿親,賢者予。新書匈奴:夫胡大人難親也,若上於胡嬰兒及貴人子好可愛者,上必召幸大數十人,為此繡衣好閑,且出則從,居則更侍。揚子法言 學行卷第一:曰:「大人之學也為道,小人之學也為利。子為道乎?為利乎?」或曰:「耕不獲,獵不饗,耕獵乎?」曰:「耕道而得道,獵德而得德,是獲、饗已.]. 다행이도 글쓴 사람이 살았던 시대란 뜻이 분명한 금왕공대인(今王公大人) 란 문구는 묵자(墨子;기원전 470?~391?)가 편술한 묵자 여러편(墨子 尚賢, 非攻, 天志,非樂) 에 많이 실렸다[.墨子 尚賢中:子墨子言曰:「今王公大人之君人民,主社稷,治國家,欲脩保而勿失,故不察尚賢為政之本也.子墨子言曰:「今1者王公大人為政於國家者,皆欲國家之富,人民之眾,刑政之治,然而不得富而得貧,不得眾而得寡,不得治而得亂,則是本失其所欲,得其所惡,是其故何也?」今王公大人欲王天下,正諸侯,夫無德義將何以哉?其說將必挾震威彊。今王公大人將焉取挾震威彊哉. ]. 고죽군의 후손으로 묵씨(墨)고, 이름은 북적 이란 뜻이 있는 작(翟)이라 한다[.Wiki: 墨家創始人為墨翟,或稱墨子。《元和姓纂》中認為墨子的祖籍是孤竹國.最傳統的說法是,墨子,墨氏,名翟,《呂氏春秋》、《淮南子》、《史記·孟子荀卿列傳》內都如是稱. ]. 홍익인간 사상이 들어 있는 겸애(兼愛)가 묵가의 핵심 사상이다. 제자백가 중에 뒤 늦게 나타난 학파로 묵자를 비조라 한다. 왕공대인이 통치하던 지역이 고조선 땅이였다. 태행(太行山)…..
2.진수가 남긴 요수(遼隧)란 곳는 어디인가? 요수(遼隧)란 글자가, 삼국지 공손도전, 무구검전, 고구려전(高句麗傳)등 세 곳에 “逆於遼隧,屯遼隧。入遼隧”란 문구로 나온다[.三國志 公孫度傳:景初元年,乃遣幽州刺史毌丘儉等齎璽書徵淵。淵遂發兵,逆於遼隧,與儉等戰。儉等不利而還。淵遂自立為燕王.二年春,遣太尉司馬宣王征淵。六月,軍至遼東.淵遣將軍卑衍、楊祚等步騎數萬屯遼隧,圍塹二十餘里。宣王軍至,令衍逆戰。宣王遣將軍胡遵等擊破之。宣王令軍穿圍,引兵東南向,而急東北,即趨襄平。衍等恐襄平無守,夜走。諸軍進至首山,淵復遣衍等迎軍殊死戰。復擊,大破之,遂進軍造城下,為圍塹。會霖雨三十餘日,遼水暴長,運船自遼口徑至城下。雨霽,起土山、脩櫓,為發石連弩射城中。淵窘急。糧盡,人相食,死者甚多。將軍楊祚等降。八月丙寅夜,大流星長數十丈,從首山東北墜襄平城東南。壬午,淵衆潰,與其子脩將數百騎突圍東南走,大兵急擊之,當流星所墜處斬淵父子。城破,斬相國以下首級以千數,傳淵首洛陽,遼東、帶方、樂浪、玄菟悉平。 高句麗傳:至殤、安之間,句麗王宮數寇遼東,更屬玄菟。遼東太守蔡風、玄菟太守姚光以宮為二郡害,興師伐之。宮詐降請和,二郡不進。宮密遣軍攻玄菟,焚燒候城,入遼隧,殺吏民。後宮復犯遼東,蔡風輕將吏士追討之,軍敗沒。 ]. 무구검전에는“率幽州諸軍至襄平,屯遼隧”라 했다. 요수(遼隧)지역이 공손연(公孫淵, ? ~ 238년)이 잡혔던 양평(襄平) 가까이에 있었다는 뜻이다[. 三國志毌丘儉:率幽州諸軍至襄平,屯遼隧。右北平烏丸單于寇婁敦、遼西烏丸都督率衆王護留等,昔隨袁尚奔遼東者,率衆五千餘人降。寇婁敦遣弟阿羅槃等詣闕朝貢,封其渠率二十餘人為侯、王,賜輿馬繒綵各有差。公孫淵逆與儉戰,不利,引還. 三國史記 公孫度傳:景初元年,乃遣幽州刺史毌丘儉等齎璽書徵淵。淵遂發兵,逆於遼隧,與儉等戰。儉等不利而還。淵遂自立為燕王.二年春,遣太尉司馬宣王征淵。六月,軍至遼東.淵遣將軍卑衍、楊祚等步騎數萬屯遼隧,圍塹二十餘里。宣王軍至,令衍逆戰。宣王遣將軍胡遵等擊破之。宣王令軍穿圍,引兵東南向,而急東北,即趨襄平。衍等恐襄平無守,夜走。諸軍進至首山,淵復遣衍等迎軍殊死戰。復擊,大破之,遂進軍造城下,為圍塹。會霖雨三十餘日,遼水暴長,運船自遼口徑至城下。雨霽,起土山、脩櫓,為發石連弩射城中。淵窘急。糧盡,人相食,死者甚多。將軍楊祚等降。八月丙寅夜,大流星長數十丈,從首山東北墜襄平城東南。壬午,淵衆潰,與其子脩將數百騎突圍東南走,大兵急擊之,當流星所墜處斬淵父子。城破,斬相國以下首級以千數,傳淵首洛陽,遼東、帶方、樂浪、玄菟悉平。 毌丘儉:率幽州諸軍至襄平,屯遼隧。右北平烏丸單于寇婁敦、遼西烏丸都督率衆王護留等,昔隨袁尚奔遼東者,率衆五千餘人降。寇婁敦遣弟阿羅槃等詣闕朝貢,封其渠率二十餘人為侯、王,賜輿馬繒綵各有差。公孫淵逆與儉戰,不利,引還. 三國志 高句麗傳:至殤、安之間,句麗王宮數寇遼東,更屬玄菟。遼東太守蔡風、玄菟太守姚光以宮為二郡害,興師伐之。宮詐降請和,二郡不進。宮密遣軍攻玄菟,焚燒候城,入遼隧,殺吏民。後宮復犯遼東,蔡風輕將吏士追討之,軍敗沒。]. 고구려전에 나오는 입요수(遼隧)란 시기를 후한 상제(殤帝;105년 ~ 106년)에서 안제(安帝: 재위: 106년 ~ 125년) 집권기라 했다. 그 당시 고구려 왕궁(王宮)이 후한의 요동 태수 채풍채풍(蔡諷)과 현토 대수 요광(姚光)이 인도한 중원 세력과 싸웠다. 후한서에도 기록 되었다. 고구려 왕궁(王宮)이 사자(嗣子) 수성(遂成)에게 명하여 요광(姚光)등을 맞아 싸우게 하였다. 싸운…..
고구려 제천 의식에 나타난 수신(隧神·禭神)의 뜻: 진수의 삼국지에 고조선 후예들의 제천(祭天)의식이 나타난다. 고조선영역의 서부지역이였던 곳에 살던 사람들을 오환 선비전에 “及祝天地山川之神. 敬鬼神,祠天地日月星辰山川,及先大人有健名者”실었다. 부여 고구려 예 한전(夫餘,高句麗,濊,韓傳) 에는 모두 제천(祭天)이라고 밝힌 의식(儀式)이 있었다. 이들의 제천(祭天)의식을 지역에 따라 몇몇 특징적인 행사를 기록 했다. 그 하나가 시월에 열렸던 고구려의 제천 의식 동맹(東盟)이다. 그 행사에 수자가 들어간 “隧神,名隧穴, 木隧” 이란 글자가 나타난다. 후한서와 통전에는 같은 행사를 설명하면서 글자를 바꾸어 “수신이라 부른다 號禭神”라고 했다. 한국 사학계에서는 고구려 제천절 행사에 모셨던 신을 아직 정확하게 설명을 못하고 있다……
삼신(三神)사상과 여진 (女眞)의 어원: 진수가 한전에 한 문구의 진(辰)자에는 동양 상고사의 많은 비밀이 숨어 있다. 진(辰)자에 꼬리를 붙인 글자를 따라가 찾아본 몇 가지만을 간단히 설명한다[.《康熙字典·辰部·辰:〔古文〕𠩟𠨷𨑄.《釋名》辰,伸也。物皆伸舒而出也。又時也。又日也。《左傳·成九年》浹辰之閒。《註》自子至亥,十二日也。又歲名。《爾雅·釋天》太歲在辰曰執徐。又三辰,日月星也。《左傳·桓二年》三辰旂旗《疏》日照晝,月照夜,星運行于天.故三者皆爲辰也。又日月合宿謂之辰。《書·堯典》曆象,日月星辰。《註》辰,日月所交會之地也。又北辰,天樞也。又《爾雅·釋訓》不辰,不時也。《詩·大雅》我生不辰。又《小雅》我辰安在。又叢辰,術家名。《史記·日者傳·叢辰註》猶今之以五行生尅擇日也。又《韻會》州名。古沅陵郡,隋置辰州,以辰溪名。又叶時連切,音禪。《韓愈詩》吾懸日與月,吾繫星與辰。叶先韻。 考證:〔《左傳·桓二年》三辰旂旗。《註》日照晝,月照夜,星運行于天,昏明遞匝〕謹照原文註改疏 ]. 첫쩨: 삼신(三神)사상의 근원: 별 진(辰)자에는 반짝이는 물체란 뜻이 있다. 삼신이란 뜻은 해와 달 그리고 북극성(三辰,日月星)을 의미 한다. 진(辰)을 신(神)이라고도 발음한다. 이 두 발음을 사음한 여러 글자(震, 娠,振,眞, 陳,秦,晉. 伸, 神,愼, 辛, 信,晨,脤,迅)의 원조가 가 별 진(辰)자다. 단은 신과 같다(旦:又與神同)는 문구가 입증한다: 서역 사람들이 중국의 제일 서쪽, 옛 제후국 진(秦)의 영역이 였던 감숙성을…..
익모초(益母草) 퇴(蓷tuī): 옛부터 한국사람들은 익모초를 아껴 길렀다. 상형글자 속에 한국 상고사가 숨어 있다는 전제 하에 동북아 역사를 연구하다 보니, 백익(伯益)이 단군 왕검이시다. 그가 우물, 바둑과 납형을 창안 했다. 기자(箕子)가 갔다는 조선은 태행산맥이 흐르는 산서성 북부, 발조선(發朝鮮))이라 했다는 등등, 뜻 밖에 여러 가지 세로운 사실을 찾았다. 익모초란 글자를 구글에서 찾아 보면(Google search) 라 했다[. 익모초는 어머니에게 이로운 풀이라는 뜻으로 어머니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 이로운 풀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 원산이며 일본, 대만, 중국에도 서식한다. 다른 이름으로는 익명, 충위자 등이 있다.]. 같은 식물을 충울(茺蔚)…..
단군왕검의 혈통과 표기: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조선 건립에 관한 기록은 모두 아시리라 봅니다. 熊女者無與為婚。故每於壇樹下咒願有孕。雄乃假化而婚之。孕生子。號曰壇君王儉。 삼국유사에 나오는 웅녀자(熊女者)란 글자는 모두들 의인체 소설의 표현으로 인식하여 암컷 곰 한마리(熊女者)라고 풀이합니다. 그러나 웅녀자(熊女者)란 글자는 란 뜻입니다. 일연 스님은 예기의 출처를 위서(魏書) 라고 밝혔서요. 위나라의 역사서란 뜻입니다. 이름을 “높다는 뜻의 사음자 위 魏, 圍, 衛”라고 지은 나라는 옛부터 여러 곳에 있섰서요. 시경에는 어느 특정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부르던 고향의 노래(향가, 鄕歌)를 모아 국풍이란 편명을 만들었서요. 그 안에 “魏風, 衛風”이라는 두 편명이 있서요. 위란 말소리는 지금 한국에서…..
자부패구(柴夫吠狗)의 자부를 자부선인(紫府仙人)으로: 모시정의에 따르면 월령(月令)에 수질신자(收秩薪柴)란 시구가 있다 하나 보이지 않는다[.正義曰:薪,木稱,故《月令》云「收秩薪柴」,注云:「大者可析謂之薪。」下章蔞草亦云薪者,因此通其文.「槱之」與《大宗伯》「槱燎」文同,故知為祭天也。《大宗伯》以禋祀祀昊天上帝,以實柴祀日、月、星辰,以槱燎祀司中、司命、風師、雨師。彼槱燎之文,唯施用於司中、司命。《月令》季冬,「乃命收秩薪柴,以供郊廟及百祀之薪燎」]. 다음사전에는고 한다. 남 목을 실 사로 바꾸었다. 시경에 있다는 많은 글자와 시구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사마천이 사기를 편찬한 이후에도 바꾸었다. 섶 시(柴)자는 천신께 제사드리려고 준비한 나무가지 (섶)을 뜻했다[.正義曰:薪,木稱,故《月令》云「收秩薪柴」,注云:「大者可析謂之薪。」下章蔞草亦云薪者,因此通其文.「槱之」與《大宗伯》「槱燎」文同,故知為祭天也。《大宗伯》以禋祀祀昊天上帝,以實柴祀日、月、星辰,以槱燎祀司中、司命、風師、雨師。彼槱燎之文,唯施用於司中、司命。《月令》季冬,「乃命收秩薪柴,以供郊廟及百祀之薪燎」]. 고구려 동천왕의 묘소를자원(柴原)이라 하고, 주 무왕이 기자의 옛 집 앞에서 분향 했(柴箕子之門)는 문구가 그 뜻이다. 시경 거공(車攻)에 나를 도와 섶을 쌓다(助我舉柴)란 시구가 그 뜻이다. 고자란 사람의 후손이 자(柴:薪也,又姓髙柴之後)를 성씨로 했다. 태행산맥 (燕之紫山) 일대(燕,晋)에서 나는 옥돌과 발조선(發朝鮮)의 문피를 귀중 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