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13 · 숫자 백(百)을 온이라고 읽었다. 옛적 말에 “온 새상, 온 누리”라한 뜻이 “모두 다(as a whole)라고 인식”하고 있다 . 홰불(白:𦣺𤼽, torch)을 뜻한 글자에 위(一)를 덮은 상형자에서 유래한 회의 (会意)자가 숫자 백이다. 단군조선 설화와 한민족의 근원에는 흰 백(白; bái bó , baak6, bhæk)자를 어간으로한 글자(伯, 栢, 貊,貃)가 많이 나타난다. 서쪽에서 어두음에 사용된 등불(𦣺𤼽, torch)의 상형자에서 유래된 글자다. 문을 열은 현상(啓)이라 했다 . 흰 백자는 어두음의 반대로 밝다는 뜻의 사음자다. 앞에서 등불을 든 사람(伯)을 지도자라고 풀이 하여 맏백이라 읽는다. 백자에는 밝음을…..
June 20 · 고조선과 한무제 영토와의 국경이 되는 패수, 그에 따른 낙랑, 대방, 양평 하는 이름을 아직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이 많아 또한번 올린다. 중국사람들이 이리저리 뒤섞어 남겨 놓은 사료를 잘 풀이해야 찾을수 있다. 낙랑(樂浪)과 대방(帶方)의 발생지: 대방(帶方)은 공손도가 낙랑(樂浪)의 남쪽 일부를 잘라 만들었다 . 낙랑이란 말은 한서에 처음 나온다. 어용학자들이 만들어 붙인 이름이다. 가규(贾逵 30-101)의 제자였던 허진((許愼, c. 58-148)의 설문해자가 낙랑의 발생지를 확인할수 있는 제일 중요한 일차 사료다. 그 안에 답이 있다. 상나라 유민들이 몰려왔던 천진-당산 일대에서 난하 계곡에 이르는…..
June 25 · 사마천은 “한국식 한자 발음으로 읽어 상서(尙書)에 실린 글자와는 다른 사음자”로 적었다. 홍범에 관한기록 또한 그러하다. 상서에 실린 골진그오행 “汩 陳其五行”의 첫 글자 “汩 흐를 율, 빠질 골”자를 설문해자에서는 “汨mì], 淿”자로 바꾸어 굴원 (屈原)이 죽은 강물이라고 했다. 산서성에서 있었던 사건을 남쪽으로 부꾸었다 . 홍범(洪範)을 “鴻範”, 구주(九疇)를 구등(九等), 이윤 (彝倫)을 상윤(常倫), 유서 (攸敘) 를 소서(所序)이라 했다 . 뜻이 더 뚜렸하다: 상윤소서(常倫所序)란; <누구나가 이해 할수 있는 상식적인 판단 (common sense ethics)이지만 일에는 순서(두서,차례)가 있다>는 뜻이다. 단군 백익이 개발한 바둑에서 묘수풀이가 일의…..
August 1 · 백충 장군이라고 비문에 실린 분이 동이의 수령 백익으로 밝혀 졌다. 필자는 백익이 단군왕검이란 논증을 했다. 그가 개를 대리고 사냥을 하는 군사훈련이 납형의 기원이라고도 논증 했다. 바둑은 치우기(纛)를 어느편이 많이 꼿았나를 계산하는 “방안에서 연습하는 전쟁 놀이”다. 이를 한국에서 만이 바둑이라고 부른다. 뚝섬에서 전쟁 연습을하여 그곳을 치우기 섬(둑도; 纛島)이라고 했다. 치우기(纛; 上:毒,下:縣)는 “산해경에 실린 “東海之內,北海之隅,有國名曰朝鮮、天毒,其人水居,偎人愛人”, 천독(天毒)의 고을(顯), 즉 영토를 뜻한 글자”다. 바둑 용어에 약우 (若愚)란 용어가 있다. 상서(尙書)를 비롯한 여러 고전에는 약(若)자가 많이 실렸다. 글자 풀이가 다양 하고 문맥이 풀이가…..
August 5 at 6:34 PM · 필자는 이달에 출시한 “새로 찾은 한국역사. Ancient History of Northeast Asia Redefined 東北亞 古代史 新論”에서 밝힌 바와 같이 중원의 동북쪽 바다(渤海, 北海 , 遼東 灣)를 한(Hahn:韓, 駻, 幹, 可汗)이 관장하던 바다란 뜻을 사음 하여 한해(翰海, 瀚海)라 하고 남만주 해안을 북명(北溟)이라고 했다 . 진수는 史記와 漢書에 “翰海”라한 글자에 물수 변을 더하여 대한해협을 한해(瀚海)라 했다 . 진수는 졸본부여 사람들의 예기를 듣고 <남만주 사람들이 한해를 따라 흐터져나간 상황>을 삼국지 왜인전에 자세하게 기술 했다. 그 통로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이…..
August 6 at 10:59 AM · 왜인전에 郡자가 몇 곳에 실렸다. 필자는 이 글자를 “백제 온조왕의 형, 비류(沸流)가 자리 잡은 彌鄒忽, 帶方郡”을 뜻한다고 풀이 했다. 그로 부터 여왕이 다스리는 지역 끝을 지나면 남자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있다. 천진(天津, 帶方郡)에서 한반도 서해안을 따라 여왕이 다스리는 영역 끝 까지가 12,000리다 . 이를 진수는“倭人在帶方東南大海之中”란 문구로 남겼다. 한반도 서해안의 중요한 정착지 대동강 하류에 있던 구라한국(狗邪韓國)일대를 대방이라고 했다. 이곳이 강서고분 유적지다. 천진항(帶方郡)에서 구라한국을 지나 <七千餘里를 가면 큰 바다를 건너게 된다. 바닷길 천리를 가면 대마도에 이른다>. 그러니…..
August 28 at 10:01 AM · 역사서는 언제나 글쓴 사람위주로 유리하게 기술 하지 않아요? 많은 분들이 <일본 역사서가 그렇다>고 하면서도 아직 중국역사서가 그렇다고 언성을 높히는 분은 몇몇 뿐입니다. 동양 상고사, 특히 한국 상고사는 중국에서 당대의 석학이 이리저리 글자를 돌려 작성한 기록에 숨어 있습니다. 춘추 필법에 따라 은미하게 기록한 사료를 잘못 풀이한 곳이 많이 있습니다. 바른 뜻을 찾으려면 서양에서 예기하는 “Read between the line”을 고려 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사람들이 써 놓은 동북아시아 역사를 우리들의 후세에게 가르치는 꼴이 됩니다.
利簋銘文: 珷征商,隹甲子朝,歲鼎克昏,夙有商。 辛未,王才闌啟,易又吏利金,用乍旜公寳尊彜。 앞서 목야전은 갑자 (甲子)일에 있었다는 기록과 금석문에 실린 갑자일 아침 (甲子朝)을 근거로 백어(白魚)가 깃발을 들고 승선한 필공(畢公,旜公)이라고 논증 했다. 유목민들이 살던 벌판에서 싸운 전쟁에 앞서 발표한 목서(牧誓)에 실린 내용과 시경 사간 그리고 무양편을 살펴 보면 목야전 전후의 상황이 뚜렸하다. **필(畢;bì)자는 햇살(햇볓,sun-ray,beam of light)의 사음자다. 필공이 양때 같이 이끌고 참전한 장면을 그린 “麾之以肱、畢來既升”란 시귀가 기/궤 (빌 기, 산제사 궤)부지습 무양(祈父之什 無羊)편에 실렸다[1]. 그가 이끈 군사가 잘 싸워 이기고 돌아오는 장면을 그린 시문이다. 이 시문을 한글 어순으로 풀이 하면; …..
성강지치(成康之治) 성강지치 (成康之治)란 문구는 유교 문화권에서 태평성세라고 평하는 시기의 대명사다. 이 문구는 진수의 삼국지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 남쪽 사람들이 만든 사자성어(四字成語)다. 같은 문구를 당나라 때 위징(魏徴)이 당태종의 명을 받아 편풀한 군소치요(群書治要 吳志下)에 인용 했다. 성강지치란 문구의 이념에 합당한 치세라 하여 당태종의 집권 시기를 정관지치(貞觀之治)라 했다. 이 문구에는 <무력을 쓰니 보다 권모술수로 다스림이 상책이다>는 뜻이 숨어 있다. 좋게 말하면, 무력 보다는 협상과 타협, 즉 외교정책을 잘한 시기란 뜻이다. 유가에서 통치자의 좌우명으로 다루는 성강지치란 문구는 유교의 비조 <공자가 가장 이상적인 정치가 이루어…..
고공단부(古公亶父)의 혈통. 주나라(周族)의 시조는 산해경과 시경에도 나오는 후직 (后穫, 后稷)이라 한다. 시경에 나오는 공유 (公劉)는 후직의 증손 이고, 함곡관 동쪽 상나라 땅에서 들어온 고공단부(古公亶父, 古公亶甫)가 후직의 후손이라 한다. 공유 (公劉)란 공(公)을 죽이고 이긴 사람 (劉)이란 뜻이 있다. 백익을 죽인 제개(帝啟)의 후손이라 본다. 홍수 피해를 받던 지역에 살았다. 공손씨(公孫氏)란 살인자 공유 (公劉)의 후손 이란 뜻이다. 하여 공손씨를 황제의 후손이라 한다 . 사마천이 만들은 황제란 직책에는 백익의 업적을 많이 실려었다. 맹자는 詩가 사라진 후에 春秋가 나타났다고 했다. 시경의 내용을 보면 서주 시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