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조선 발생지와 제후국 연(燕): 이렇게 전국시대 (戰國時代, 기원전 403년 ~ 기원전 221년) 부터 진시황이 중원을 통일 할때 까지 연은 갈석산 남서쪽에 있었다. 중국 사서에; <서진 창립 초에 소공 석(召公 奭)을 연(燕) 땅에 봉하고 도읍을 현재의 북경 일대로 정했다>는 주장은 낭설이다. 소공 석(召公 奭)은 황하문명의 발생지에서 옛 <단군조선의 수도 평양 일대에 봉지를 받았다 . 사기연소공세가에 주 무왕이 상나라를 멸하고 소공을 (서주의 수도 호경) 북쪽 호수가 물제비가 날아 다니는 조용한 곳에 봉했다 (封召公於北燕). 이를 후세 사람들은 북연 (北燕)을 독립된 명사로 풀이…..
대륙백제-9. 총 결론: 대륙백제가 중원의 옥새를 잡다: 간략하게 삼한의 후예들이 펴처 나났던 중원을 살펴 보았다. 한해의 동북쪽과 동남 쪽을 살펴보기로 한다. 대륙에 백제가 중원의 옥새를 잡았던 시절이 삼한의 후예들이 가장 넓은 지역을 관장 했다. 그러나 이에 관한 기록이 혼미 하다. 그 본보기로 고구려의 수도 장안성과 임유관을 살펴 본다. 북제 (北齊) 어린 황제의 옥새를 빼았은 우문씨가 세운 북주(北周; 557년–581년)는 26년 만에 멸망 했다. 북위의 재상 고환의 아들 고양이 동위를 건국하자 북위에서 도망 갔던 우문태의 아들 우문각은 557년에 북주를 건국했다. 우문씨는 정권 싸움 으로 581년에 외척(外戚)양견楊堅, 541년– 604년)에게…..
삼국사기에 실린 “高齊後主拜王”란 문구: 북제후주가 백제왕에게 절을 하고 (高齊後主拜王) 하는 문구: 북제에 옥새를 넘겨준 위서(魏書)에는 신라 (新羅)란 글자는 없고, 대륙백제의 전신을 왜(倭)로 바꾸어 노양왕 왜노(魯陽王倭奴)라고 했다 . 진수가 단석괴 (檀石槐:137 ~ 181)를 설명 할때 나온 발해만 서남쪽 해안에 살던 한인 한국(汗人. 汗國)을 사음 하여 왜(倭)자로 기록 했다 . 한반도 서쪽 해안에 있던 국가를 백제 (百濟)라 하여21대 개로왕(蓋鹵王:재위: 455년~475년) 이 북위에 사신을 보네 장문의 표를 올려 도와 달라고 했다 . 그 내용에는: “延興二年,其王餘慶始遣使上表曰:「臣建國東極,豺狼隔路.” 하는 문구로 시작 했다. 472년 (延興二年)에 백제 개로왕…..
동하(東夏)가 대륙백제-3 끝: 남북조(南北朝)를 통일한 수나라: 한국 상고사의 핵심이 되는 삼국지 동이전에 나타난 는 새로운 학설을 발표 했다. 이를 입증 하는 과정에서 는 단서를 찾았다 . 조위의 뒤를 이은 사마씨의 왕조를 다루면서, 진서(晉書)에 고 풀이 했다. 지금 훈고학(訓詁學)이란 이름을 옛적에는 고훈 (古訓, 故訓)이란 글자를 많이 써고 풀 해자를 써서 해고 (解故, 解誥, 解詁)라 하는 등, 같은 뜻을 여러 글자로 기록해 왔다. 같은 현상이 수지(數至)이다. 한전(漢典)에 至数가(至數)와 같다고 했다 . 진서 동이열전에는 문제가 제상으로 임명 했다는 사람을 옛적에 주 무왕에게 활을…..
십육국춘추 (十六國春秋)-3: 부여의 선조는 햇님의 후손: 십육국춘추 (十六國春秋)에서 다룬 시기가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미천왕(美川王, 재위 : 300년 ~ 331년)에서 부터 광개토대왕((廣開土王, 재위: 391년? ~ 412년) 집권 시대 까지다. 서진의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고 있던 대륙 백제를 사가들은 아직 모용씨라는 동부선비의 한 부족으로 인식한다. 부여의 어원을 다룰 때에 를 지적 했다. 모용 씨는 부여의 한 부족이 였다. 그들이 먼저 고조선의 옛 땅을 찾으려고 고구려 서쪽에서 싸웠다 . 고구려는 대륙 백제의 명맥을 이어가던 모용외(慕容廆)에게 293년에 처음으로 친입을 당하고 3년후 295년에는 서천왕의 묘를 수탈…..
십육국춘추 (十六國春秋)-2: 수수께끼가 풀린다. 북위 말엽 산동성 임치(山東省淄博市臨淄) 태생의 최홍(崔鴻)이 쓴 십육국춘추 (十六國春秋)에 실린 백제는 그 영역이 중원이였다는 사실을 그렸다 . 이 시절에 고구려가 서쪽에 있던, 연(燕)나라 위(魏)나라와 자주 전쟁을 했던 사실이 삼국사기 고구려 편에 실려 있다 . 십육국춘추 (十六國春秋)에 나타나는 신라와 백제는 마땅히 남만주 땅이여야 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는 결론이 나온다. 앞에서 본바와 같이 서진이 망할 징조는 건국 시초에 나타났다. 사마염이 원주민이 였던 고조선의 유민을 농락 하여 불만을 샀다. 발해연안에 살던 동부 선비파와 한해를 관장 하던 대륙 백제는 서진…..
십육국춘추 (十六國春秋)-1: 고조선의 후예들이 조위의 뒤를 이은 서진(西晉, 265년- 317년)을 멸망 시키고 여러 나라를 세워 자웅을 다투던 시기를 오호 십육국 시대(五胡十六國時代: 304년 ~ 439년)라 하고, 그 시기를 기록한 역사서를 십육국춘추 (十六國春秋)라고 한다. 회수(淮水) 이남으로 도망 가서 사마예(司馬睿)가 남경(南京)에 세운 사마씨의 망명 왕조가 동진이다. 사마씨의 한 자손이 낭야에 봉해저 290년에는 그가 낭야왕(琅邪王)으로 봉해 졌다. 다음 해에 수도 낙양에서 발생한 팔왕의 난 (八王-亂, 291년 ~ 306년)에 살아나 강남으로 도망 갔다. 그가 동진(東晉; 317년 ~ 420년) 의 첫 황제다. 양자강 이남에서 동진의 뒤를…..
동하(東夏)가 대륙백제-2: 너무 상상 밖의 발설이라 “제씨천동하(齊氏擅東夏)가 대륙백제를 비하하여 부른 이름이라는 새로운 학설”을 좀더 설명 한다. 동하(東夏)란 무슨 뜻인가? 진서(晉書)에는 선륭동하(宣隆東夏)란 문구가 서진(西晉, 265년 ~ 317년)의3대 황제이자 마지막인 회황제 (西晉 懷皇帝, 284년 ~ 313년) 때에 나온다 . 선륭 (宣隆)이란 불교에서 쓰던 낱말을 사음한 글자로 손윤(孫倫(宣隆)念住禪修法) 이라고도 기록 했다. 불교 서적에는 선윤서(宣隆西)란 문구고 많이 보인다. 선륭동하(宣隆東夏)란 문구에서 하가 목적어 동(東)자는 형용사로 썼다. 삼국지에는 후한 말에 동탁(董卓, ? ~ 192년) 이 184년 황건적 난과 189년에 발생한 십상시의 난의 혼란기를 다룬 무제기에 나온다…..
동하(東夏)가 대륙백제: 주서(周書)에 실린 “齊氏擅東夏”라고 비하 하여 부른 나라가 대륙백제의 전성기 였다. 이 나라를 흔히 북제(北齊)라고 불렀다. 북사(北史)에는 남북조 시대(439년 ~ 589년)에 선비족 고씨(高氏)가 북제(北齊, 550년 ~ 577년)를 세워 27년간 존제 한 기록을 제본기(齊本紀)에 남겼다 . 같은 내용이 태평어람 (太平御覽 北齊高歡)등 여러 곳에 실렸다 . 그 내용의 출처를 북제서 (北齊書)라고 했다. 북제의 사관을 지냈던 이덕림의 유업을 이어 받은 아들 이백약(李百藥, 564-647)이 북제서를 완성 했다. 북제의 건국에서 멸망 까지를 목격한 사람들이 남긴 기록이다. 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에는 동하를 요해 갈석산 일대(東夏一作遼碣)라 했다 . 동하(東夏)에…..
진서 본기 (晉書 帝紀)-5: 진무제(晉武帝)를 방문한 마한왕(馬韓王)이 대륙 백제왕: 사마중달의 아들 사마염이 조위을 찬탈하여 세운 서진(西晉;265年-316年)은 한 세대도 체우지 못하고 왕자들이 들고 일어난 팔왕의 난(八王-亂, 291년 ~ 306년)이 10여년간 계속 되여 결국 하북 평원을 떠나 강남으로 도망을 갔다. 이때 부터 대륙 백제가 있던 하북 평원의 역사는 오호 16국의 역사 속에 숨어 있다. 그러나 중국기록에는 고조선의 후예들 중에서 내륙을 생활 무대로 했던 기마민족의 역사 만을 남기고, 해양으로 퍼저 한해(翰海)를 통치 했던 삼한의 후예들에 관한 역사는 중국 땅에서는 완전히 밀어 버려 한반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