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진전(弁辰傳)-3 끝: 삼국사기는 신라가 나라를 새우고 사신으로 호공을 마한 (馬韓)에 보내니, 마한왕이 말하기를 는 기록이 있다 . 마한(馬韓)이 변진전(弁辰傳)에 실린 소읍국가들을 통치했다는 뜻이다. 그와 같은 기록이 삼국지 변진전(弁辰傳)에 도 실려 있다: 상나라의 종말이 되는 전쟁터를 목야 (牧野) 또는 무야(坶野)라 한다 . “소가 우는 소리, 馬/牟;móu mù mào”라고 기록 되던 사람들이 살던 벌판이란 뜻이다. 위만에게 쫒겨 마한땅에가서 왕이 되였다는 기준의 가계를 모성한씨 (冒姓韓氏)라고 했다 . 일설에는 한혁에 나오는 한후의 부피한성이 하북성 탁군일대에 있었다고 한다. 마한(馬韓)왕이 속해 있던 부족들이 황하 이북 중원…..
東夷傳-3: 도전(刀錢) 춘추전국시대에 북주후가 다스리던 곳이 전쟁도 없고 물자도 풍부하여 중원 사람들이 그리워 하던 낙원(遼寧)이라 했다. 그 곳에 살던 사람들 동호(東胡, 胡)는 마땅히 글자와 화패를 만들어 쓰고 있었다고 본다. 전사사 (前四史)에는 글자와 화패에 관한 설명이 없다. 서역 사람들이 사용하던 글자를 호서(胡書)라 했고 그 곳사람들은 금은전(金銀錢)을 사용한다고 했다. 춘추시대에 북주후(北州侯)가 중원 산동성에 있던 여러 제후국과 활발한 교류를 했다 . 옛적에 유통 화패에는 칼모양 도 있었다는 기록이 통전(通典 錢幣上) 에 있다 . 변진전(弁辰傳)에는: 개용전(皆用鐵)이란 문구는 철이 유통 화패로 씌였다는 뜻이다. 변진전에 여러…..
회소곡(會蘇曲): 한국 전통 악기로는 가야금과 거문고 (瑟)를 친다. 해금 (奚琴) 이라는 현악기가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전사사(前四史)에는 삼국지 변진전 (弁辰傳) 에 축과 비슷한 현악기(有瑟,其形似筑)가 있었다고 했다. 옛 고조선 땅에 살던 사람들이 쓰던 가장 오래된 악기다 . 필자는 “古朝鮮 찾기”에서 “글자를 사용하기 전부터 노래와 춤이 있었다. 먼 훗날에 그 를 모아 글로 남긴 유산이 시경(詩經)이다”는 전제로 시경에서 우리민족 의 상고사를 살펴 보았다. 하여 단군왕검이 수도로 정한 평양이 산서성 해지 동북쪽에 있는 운성시 일대라고 추론 했다. 사마천은 옥중에서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지난 두주 동안에 온 새상이 떠들석하는 큰 사건들이 발생 했다. 모든 것을 다 외면하고 저나름 대로 갈길을 갔던 동키호태 (Don Quixote)같이 필자가 생의 마지막 학업으로 선정한 “古朝鮮 찾기”를 계속 합니다. 진수는 중원에서 고조선의 수도에 이르는 통상로를 삼국지 변진전(弁辰傳)에 실었다. 지리적으로는 발해만 서남쪽에서 조양으로 올라가는 길목이다. 사마천이 “진번방중국(真番旁眾國), 즉 진한 번한들이 사는 방향에 있는 여러 나라들”이라고 기록한 곳이다. 먼 훗날 당태종이 만주지역에서 고구려와 싸우고 남긴 글 극고구려백암성소 (克高麗白巖城詔)에 고구려 사람들을 삼한사 (三韓士)라 부르고 백암성 일대를 변진지야 (弁辰之野)라 했다. 그 안에는 여러가지…..
대동재단 바른역사정립위원회에서 작성한 은 오히려 진정서의 힘을 약화 시킨다. 폭을 넓혀 하자는 제의가 더 바람직 하다고 본다. 그분이 제시한 오류란 소제는 마땅히 다른 사학가들의 의견도 들어 보아야 하는 그분의 주장이다. 다음은 그러한 소제에 관한 필자의 사견 (私見) 이다. 진정서의 핵심은 동북아시아 역사가 중국사서에 잘못 기록된 이유를 밝혀주어야 한다. 필자는 이문제를 로 동북아시아 역사가 중국사서에 잘못 기록되였다는 예를 밝혀나가고 있다. 1. 한사군 (漢四郡): 한무제 (漢武帝) 시대에 고조선의 서쪽 영토 일부가 중국의 한사군(漢四郡) 지역으로 편입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때의 한사군은 오늘의 한반도…..
삼국지 위서 30 (三國志 魏書三十)를 논한다. 東夷傳-1: 개요 오환(烏桓, 烏丸)과 부여(夫餘, 扶餘) 고구려(高句麗)란 이름은 삼국시대 이전 부터 있었다. 이 세편은 진수의 역사관을 다른 사가들과 비교해 볼수 있는 좋은 사료다. 오환(烏桓, 烏丸)에 관한 설명을 끝마첬다. 부여(夫餘, 扶餘)에 관해서는 뒤에 다루기로 한다. 고구려편에는 만주 땅에서 중원 세력을 쫓아 버리고 고조선의 전통을 이어 받아 기마유목민족 (騎馬遊牧民國家, The Eurasian Steppe)이 였던 우리 민족의 조상이 동북아시아에서는 제일 동쪽에 있던 강국으로 등장한 예기가 실려 있다. 필자가 선정한 고조선(古朝鮮)찾기의 끝장이 된다. 기자가 조선 땅에 갔다하니 그 글자가…..
오환, 선비와 동이의 관계: 중국사서 동이전에는 그들 특유의 “삼천갑자 동방석, 백발 삼천척”이라 한 표현과 같은 과장이 많이 보인다. 제후국 연의 동쪽에 있던 세력을 동호(東胡)라 했고, 진시황 본기에는 “기/지 조선 (暨朝鮮)이라 했다. 진시황이 기원전 221년에 중국을 통일하고 북쪽에 있던 정치세력을 맊으려고 장성을 쌓았다 . 기원전208년에 모두 선우가 동호왕 (東胡王)을 살해한 이후에는 예맥조선(穢貉朝鮮)이라 했다. 한무제가 기원전 108년에 설치 했던 4 군사 병영이 선비(鮮卑) 오환족의 영역으로, 동쪽 경계는 요택(遼澤) 이라 했다 . 오늘의 요하(遼河)를 넘지 못했다. 한서의 지리지에는 한무제가 정벌한 이후의 만주지역에 관한설명…..
진수는 기원전 208년에 흉노 묵돌선우(冒頓單于)의 급습으로 동호왕이 죽을 당시 오환산(烏丸山) 과 선비산(鮮卑山)에 숨어 생존하여 오환(烏丸)과 선비(鮮卑)라는 부족 이름이 생겼다고 했다 . 오환산(烏丸山) 과 선비산(鮮卑山)이 오늘의 지도에는 어디였는가를 찾아 본다.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흉노가 동호왕을 살해 하기전에 오환(烏桓, 烏丸)이 제후국 연(燕)의 북쪽에 부여(夫餘)와 같이있었다 . 그 일대에는 동호(東胡)영역에 옛부터 소유권을 놓고 동호와 흉노가 싸우던 구탈(Ou tuo甌脱, 歐代地)이 있었다. 이곳이 옛적에 헐거생활을 하던 유적 (Ancient Cliff dwellings古崖居遺趾)이다 . 오늘 북경 서북쪽 만리장성에서 가장 인기있는 팔달링(八達嶺) 가까이에 있다. 오환 선비 두 산 이름은…..
고조선 발생지에서 찾은 삼족오(三足烏): 오환(烏丸, 烏桓)이란 말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라 오손(烏孫)이라고도 부르던 부족의 한 분파다. 그들을 “호, 휴, 시, 해, 지애, 기”하는 여러 글자로 기술 했다. 산서성 해지 연안에 정착하여 단군조선을 새웠다. 이곳에서 그들은 삼족오(三足烏)를 찾았다. 시경에서는 했다. 산해경에는 해지연안 구주(九州, 九疇)늪지에 살던 학 (두루미, Blue Heron, 황새)를 삼족오라 부른듯 하다. . 산해경에 실린 내용을 이리저리 맟추어 필자가 만든 풀이다 . 한국에서는 장닭을 상여(喪輿) 위에 올려 놓았다. 삼족오가 장닭으로 변한 듯하다. 시경에는 이곳을 소제로한 시문이 많이 실려 있다……
고조선 사람들을 동호(東胡)라 했고 그들은 삼족오를 신성시 했다. 삼국지에는 오환과 선비가 모두 동호의 후예라고 했다. 옛적에 조선 (古朝鮮)땅에 그들의 후손이 새운 나라가 글안(契丹)이라고 부르던 대요(大遼,Khitan Empire) 제국이다 . 동호(東胡)의 동자는 형용사다. 서쪽에 살았던 호(胡)가 동쪽에 와서 살던 사람들을 뜻한다. 시대적 측면에서 보면에는 모두 동서 하는 형용사 없이 호(胡)라고 했다 . 후한 시대에 편찬된 에 서호(西胡)란 말이 처음 나온다. 후에는 모든 사서들이 서호 (西胡)란 이름을 사용 했다 . 진 태강 (晋太康间, 280 -289년)에 발굴된 급총주서 (汲冢周書, 逸周書)에는 서호(西胡)는 없고, 동호 (東胡)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