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김 탁 대표 께서 동이 (東夷)의 뜻을 간단요약 하게 설명하여 face book에 올렸기에, 저의 “古朝鮮 찾기. 첫 장: 어떻게 찾았나. 글자 속에서. ” 에서 밝힌 내용을 근거로 보충 설명 한다. 앞에서 사이지악(四夷之樂)을 “그들이 흐터저 서러움을 춤과 노래로 표시 했다”고 설명 했다. 주 무왕은 목야전 이후에 서주의 발생지가 되는 해지 연안에 살던, 고조선의 근간이 되는 사람들을 착취 학대 하기 시작 했다. 그들은 사방으로 흐터젔다. 이들을 방위를 뜻하는 형용사를 앞에 붙여 기록 했다. 남쪽, 서쪽에 있던 살람들은 즉시 동화 되여 “서이…..
서주의 건국부터 멸망: 서주의 건국은 기원전 1046년에 목야전에서 상을 멸망한 기록을 근거로 찾아 본다. 지난주 시월 16일 에 올린 “고조선 영토-3” 과 17일에 올린 “단군조선의 천도. 왕검성 (王儉城)을 찾다”까지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산서성에서 동으로 하북성을 지나 산동반도에 이르는 중원 전역에 흐터저, 미 합중국 초기와 같은 연맹 (聯盟) 집권 체제( “Confederation of many town States)를 이루고 살았다. 이 당시의 영역을 다음 장 “고조선 영토-4. 서주의 건국과 멸망”에서 설명 하려고 “고조선 영토-5. 춘추시대”의 대명사로 불리는 “춘추오패”의 어원을 다루었다. 현제 춘추오패라는 첫쩨 두쩨로…..
단군조선의 천도 Kyung Sup Han 씨. 저는 아직도 기다립니다. 기다리다 지처 독백을 합니다. 민족의 소원인 왕검성 (王儉城)을 찾았습니다! 중국사료에는 평양(平壤)을 평양(平陽)이라 기록 했고 같은 이름이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곳에 흐터저 있다. 모두 서주의 제후국이였던 진(晉)의 영역으로 산서성 일대에서 나타난다. 해지연안이 제일 남쪽이였다. 진(晉)이란 한자를 풀어 보면 “밝은 빛이 땅위로 올라오는 형상 (臸,下:日)으로 조선(朝鮮)이란 뜻이 있다 . 삼국유사에 실린 수도 이름들을 추적하여 오늘의 지도에서 그려 본다 . 장당경(藏唐京) 은 “북당의 수도 당경”이다. 당경(唐京)이 당도(唐都)다. 사마천의 아버지가 천관을 배웠다는 곳이다 ……
단군조선 건립부터 목야전 바로전 까지: 기원전 2333년-기원전 1046년. 좀더 첨부하렵니다. 단군왕검 백익을 잃고 분邠수를 따라 북쪽으로 피란 갔던 고조선의 후손이 상나라 무을(武乙: 1147 to 1112 BC)원년에 기산 유역으로 내려왔다. 그 곳에 서주의 시조로 알려진 고공단보(周公亶父)가 들어와 알력이 생겼다. 단보(亶父)가 전사/하고 뒤를 이은 셋쩨 아들 계력(周公季歷)이 원수를 갚았다. 그가 주 문왕(周 文王,기원전 1152년~1056년)이다. 竹書紀年 武乙: 元年壬寅,王即位,居殷。邠遷于岐周 三年,自殷遷于河北。命周公亶父賜以岐邑. 二十四年,周師伐程,戰于畢,克之 무을의 두를 이은 문정(文丁) 2년에 계력이 해지 연안 전투에서 실패 했다. 그후 전공이 많은 계력(季歷)을 죽였다. 계력의 아들 창(子昌立)이 뒤를 이었다. 그가 서백…..
단군조선 건립 이전: Kyung Sup Han 씨가 아직 소식이 없군요. 저가 예기하던 “고조선의 강역”에 관한 예기를 계속 하겠습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단군조선 건립 이전 까지의 선사시대를 다루어 보겠습니다. 태사공은 우왕의 혈통을 밝혔지만 그의 조부 이전은 확인 할수없다고 했다. 아버지가 치수사업에 실패한 곤(鯀)이고 조부 전욱이 처음으로 달력을 만들어 이를 전욱력(顓頊歷)이라 했다. 곤(鯀)과 전욱(顓頊歷)은 생존 했던 인물로 본다 . 글자가 나타나기 전에도 사람들은 시를 읊고 노래 부르며 춤을 추었다. 동북 아시아 사람들이 노래하며 춤추는 장면을 “새와 동물의 털가죽을 쓰고 한 다리”로 박자에…..
첫장. 서론 지금 까지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단군조선의 시발점이 삼국유사에 실린 대로 기원전 2333년에 운성시에서 발생하였다. 이 해를 영(0,Zero) 점으로하여 그 전을 역사 이전, 즉 선사시대 (先史時代)라고 부름이 합당 하다. 기자가 상나라 유민은 이끌고 기원전 1046년에 조선 땅에 피란을 왔다. 그들이 들어온 곳이 발해만 서남쪽 당산 일대다. 1287년동안 단군조선은 수도를 운성시에서 동으로는 당산에 이르는 지역에서 여러번 옮겼다. 이 장에서는 단군조선이 중원 세력과의 세력 분쟁에서 어떻게 변해왔나를 살펴보고자 한다 . 중국이 정사라고 이르는 24사에는 오류가 많다는 이론이 옛 부터 꾸준히 제기…..
목천자전(穆天子傳)-2. The Tale of King Mu, Son of Heaven 앞서 “신시 (神市) 환국 (桓國)시대 의 첫 장 서론”에서는 사기 대완열전을 근거로 첫 아사달이 어디였나를 찾아 보았다. 사마천은 서쪽에 다녀온 장건(張騫)의 말을 인용하여 “곤륜, 서왕무”하는 이름이 허황된 낭설이라 일축했다. 뒤에 한서 서역전에는 천산 남북로를 자세히 설명했다. 북로에 있어야 하는 오손국 (烏孫國)의 지명을 모호하게 기술 했다. 사실을 숨기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 두를 돌아 보니,아직도 의문에 싸여 있는 목천자전에는 “적오씨(赤烏氏) 서왕무, 곤륜” 하는 이름이 나와 있다. 허황된 꿈 예기라고 평하는 의문의 목천자전(穆天子傳)을 다시…..
실증주의 역사관(歷史觀)의 맹점: 실증주의 사관에 빠진 양독(洋毒)이라 하셨는데, 저는 이를 실증사학파들의 가치관에서가 아니라 그들이 시야를 넓게 판단하지 못한 결과라고 봅니다. 현행 되는 역사서 (Historiographies)의 논문 작성 지침은 다른 과학잡지(Scientific Journals)에서 넓리 사용하는“서구 문명에서 개발한 증명방법(Confirmation Process)에 따라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분들 논증 (증명 방법)의 핵심은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다; 1+ 1=2”하는 “사실의 학”에서는 따라야 하는 서양철학 (Western logic)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즉시각(stance, paradigm)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림 글자로 편찬한 동양고전, 특히 역사기록”은 사실 뿐만 아니라 당대의 사관이 그의 정서와 가치관등을…..
한국항공대 교양학과 교수 우실하 교수의 재미있는 요하문명을 읽고. 누구나가 인정하는 역사학계 중진되시는 분의 글을 읽을수 있서 감사 합니다. 이를 읽고 지난달 (September 10, 2016) 이 face book지면에 올렸던 “역사 인식론”을 다시 천명코자 합니다. 저는 “古朝鮮 찾기”에서 실증사학을 자부하시는 분들에게 힘이 될수 있는 실증을 보여 드렸습니다. 이를 “상형글자에서, 시경의 여러 시문에, 전쟁기록에, 그 당시 산서성 일대에 살던 사람들이 하던 말의 어순이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어순과 같더라”고 찾아 보여 드렸습니다. 그 결과 단군왕검은 중국문헌에 나오는 우왕이고 평양이 산서성 서남쪽 해지 동북연안에…..
신비의 서왕모(西王母) 오손왕 곤모 (烏孫王昆莫) 첫 아사달에 관한 내용을 종합해 보면 서왕모 (西王母)와 곤륜(崑崙)은 가차전주한 글자가 확실 하다. 곤륜(昆侖)이 하느님의 지시에 따라 하앟케 눈이 덥힌 제일 높은 산(太伯山, 崑崙)에 내려와 신시시대가 시작 되였다. 그가 환웅천왕이다. 그 곳에서 부터 환웅천왕을 숭배하는 부족이 사방으로 퍼저 나갔다. 사기 대완열전에 나타났던 글자들을 근거로 중동과 동북아시아 문화의 교류를 살펴본다. 첫 아사달 신시 (神市)에는 서강의 제사당(西羌之宇)이 있었다. 그 건물을 지었다는 강족을 살펴 보면 동강(東羌)이란 글자가 보인다 . 강(羌)자는 “고달플 강 羗”자의 속자로 옛적에 인도할 유(羐)자라 한다.우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