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 (神市) 환국 (桓國)시대 (1)의 첫 장 서론. 첫 아사달, 신시 (神市)는 어디였나. 환웅천왕이 다스리던 한국 (桓國)시대의 첫 수도를 한자로 신시 (神市)라 했다. 그 사람들이 쓰던 말로는 그 곳이 첫 아사달이다. 이를 어디였나를 찾아 보았다.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사마천은 그 당시에 있었던 전설을 포함한 여러 사료를 정리하여 중화사상을 설립하여 많이 과장하여 사기에 실었다. 사마천은 뫼산 변의 곤륜(崑崙)은 서쪽에 있다는 높은 산을 뜻했고 뫼산 변이 없는 곤륜(昆侖)이란 글자는 제사장 (道人, high Priest)을 뜻했다고 본다. 무제본기에서는 천자(한 무제)가 명당에 들어가 야외에서…..
역사 인식론: 이란 책에서 송 교수는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는 고구려와 신라가 고조선에서 나왔다는 계승의식을 갖고 있었다’면서 “반면에 이 계승의식을 중국사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저는 어찌하다 어저께 Ohmynews에 실린 옛 기사를 읽었습니다. 김종성의 서울대 송기호 교수 “고구려사 배제는 신라 중심주의” 07.12.18 09:56l최종 업데이트 07.12.18 09:56l 김종성(qqqkim2000) 저는 특히 동북아시아 상고사 연구는 “역사 인식론”과 직결되는 문제라 최대한으로 넓은 시각(철학적)에서 옛 중국문헌을 읽고 그 속에 숨겨진 우리의 역사적 사실을 복원 해야 한다고 Prologue에서 방법론을 내 놓았습니다.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기사에…..
신시 (神市) 환국 (桓國)시대 1. 신시 시대의 역사는 지금까지 알려진 사료를 근거로 추적해 올라가는 수 밖에 없다. 단군왕검이 치수사업에 성공하여 만장일치로 왕중왕이 되여 그를 대우라 하고 예맥족 출신이라 하여 대우모(大禹謨)라 했다. 참(僉, ; 咸也,皆也)자에는 “모두 다”란 뜻이 있으나 더 뚜렸하게 사람 인(人)변을 붙여 “모두의 왕”이란 뜻에서 왕검 (王儉)이라는 새 칭호가 붙었다고 본다. 그는 다른 사악 (四岳)의 지도자 (稷、契,暨,皋陶) 와 같은 제사장(壇君)이였다. 모두가 추천하고 절대 다수가 인정하자 그는 다른 제사장들에게 다시한번 사양했스나 순 (舜)임금의 결정에 따라 최초로 제사장으로서 집정권을 허락 받은…..
구주(九州, 九疇,九丘,九谷,九土)가 얼마나 큰가? 겨우 해지(解池)의 4-5배 였다. How big was the Nine Provinces that Wu the Great developed? It is known that Chinese scholars had been exaggerating a lot to please the emperor in every sense. The size of Nine Provinces (九州) Wu the Great developed have been one example. I would like to share my understanding with you all. According to the Huainanzi, the size of Nine Provinces were merely 1000-squire ri which could be not more then…..
1.중국 문헌에서 찾은 장승 산해경에 백민 (白民) 숙신(肅慎) 남쪽에 분수 하구에 살았다. 이들을 동호라고도 했다. 그들의 풍속은 ‘서낭당에 새운 장승과 같은 나무통을 새워’ 놓고 그 나무 위에는 ‘사람 얼굴 셋을 깎아 새워 놓았다. 늘 천조각이’ 달려 있었다. 옛적 제왕에서 이름을 따와 환웅천왕 상(雄常)이 이라 부른다. 이 장승 나무를 를사/시랑간 (伺琅玕)이라고도 했다. 미국서북부 인디안, 하와이등지에서 보는 토탬폴(Totem Pole)과 유사 하다. 그사람들이 산서성 해지 연안에서 고죽국 후손과 같이 동쪽으로 이주하여 갈석산 유역에 자리 잡고 살았다. 《唐書•地理志》平州北平郡。《廣韻》古山戎孤竹,白狄子二國之地,秦爲遼西郡,隋爲北平郡,唐爲平州 山海經: 肅慎之國在白民北,有樹名曰雄常,先入代帝,於此取之. 有大澤之長山。有白民之國. 東胡在大澤東. 服常樹,其上有三頭人,伺琅玕樹。 Published…..
삼국유사 고조선 편에 나오는 신단수하 (神壇樹下)가 한글 어순으로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단 (祭壇)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서”란 뜻이라는 필자의 주장을 입증할 증거가 시경에도 있다. 시경 소아 홍안자십 (詩經 小雅 鴻雁之什)에는 옛 서주 수도 호경(鎬京, 鄗)이 있던 해지연안의 지형이 많이 나온다. 그곳에 단군(壇君)의 평양 (平壤, 平陽)이 있었고, 면수(沔水) 洛水 汾水 降水, 歷山, 首陽山 려희의 驪山, 梁山, 우왕의 아버지 곤이 쌓았다는 산성에 왕이 살았다는 왕옥산 (王屋山), 그 가까이 숙신 씨가 살았다는 불함산 (不咸山) 즉 부암 (傅巖)이란 이름이 나타난 곳이다. 이지역에서 나타난 시…..
New edition One day later. 역사학계에서 발표한 성명서를 읽고 해외 사는 사람으로서 한마디: 글쓰는 사람이 겪어야 하는 제일 어려운 일이 역사서작성이라 봅니다. 집권자가 인정 해야 “공인된 역사서”가 되니 옛부터 이를 담당한 사관은 때로는 처형을 당한일, 근래에는 각종 언론 매체에서 필화사건을 다루었습니다. 외람 되이 발표하신 글 내용과는 거리가 먼 사안을 귀 단체 여러분 께서 깊히 고려해 주십사하는 심정에서 이 글을 올립니다. 거론 하신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하는 원천이 되는 문제를 우선 다우어 주시기 바랍니다. 조상의 이름자부터 바로 쓰자하는 저의 울부짐 입니다. 단군왕검(壇君王儉)이라 적어야…..
왕중왕 (大禹)이란 칭호가 붙은 우왕과 직결되는 어휘는 치수사업과 홍범구주 (洪範九疇)다. 이를 함께 살펴보면 단군왕검의 치세 (治世)를 알수 있다. 우왕의 선조 혈통: Lineage: 帝顓頊高陽氏->곤->우이된다. 공공 (龔工,共工), 구룡 (勾龍) 의 후손이 후토 (后土)라 하나 그 관계는 모호하다. 공자가 제자의 질문에 “노자에게서 들은 예기”로 오제에 관해 답한다. 공자가어에 따르면; 오제는 “태호(太皞) 복희씨, 염제(炎帝)신농씨, 황제(黃帝),소호 (少皞) 김천씨,전욱(顓頊)고양씨라 했다. 앞에서 “우 또는 위(禹, 魏)자가 사음자”라 했다. 이를 훈역하면 “높을 고(高) 즉 하늘, 임금을 뜻”하니 소호 (少皞) 김천씨와 전욱(顓頊)고양씨는 우왕과 같은 흉노 혈통이다. 소호 김천씨의 후손…..
부여 (扶餘)의 어원, Etymology of Buyeo 모두 아시는 바와 같이 “부여의 어원”에는 학설이 구구합니다. 사슴 또는 비둘기와도 관계가 있다 합니다. 저는 첫 영문본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By Xlibris. 07/18/2013” 에서 부여란 말은 사음자로 “상 무정 (商武丁approximately 1250-1192 BC) 이 부암 (傅巖, 즉 不咸山) 노역장에서 노예로 일하던 현인을 얻은 조언자를 얻어 그에게 붙여준 이름 기뿜/ 부열(Buyuel傅說)에서 유래 했다고 추리 했습니다. 이는 사마천의 풀이와 초사(楚辭)에 나오는 문구를 근거로 다른 사료들을 종합 하여 추리 했습니다. 그 후손이 상 왕조의 조언자로 계속…..
다음은 8/6/2016 날자로 “Journal of Science”에 올린 글이다. 동양 사람, 특히 한국사람들은 꼭 알아야 생각되기에 귀지Epoch Times Korea 대기원시보 에 다시 보냅니다. 우왕의 치수 사업은 전설이 아닌 역사적 사실로 인식 되고 있다. 이시기가 단군조선의 출발과 일치 한다. 필자는 미궁에 싸인 단군조선의 도읍지 평양(平壤)이 중국기록에 나오는 우왕의 수도 평양 (平陽)으로 산서성 동남쪽에 있는 해지(解池) 동북연안에 있었다고 필자는 “古朝鮮 찾기, 책 미래, 2016년 8월 4일 출판”에서 밝혔다. 글자풀이,시경등의 각종 사서를 종합 분석하여 대우(大禹) 가 단군왕검 (壇君王儉)이라 추리 했다. 그가 왕검의 지휘권을 빼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