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ymology of Three Hahn:
Chen Shou left the phrase “有三種”, which means Three kinds of Hahn, named “馬韓,辰韓,弁韓”, and made a section of Byeon-Jin(弁辰傳). Though the names “馬韓,辰韓” being used without any disputes, “弁韓” had been recorded as “弁韓, 示韓” in Chinese , but Korean used only “卞韓” through history.
The adjective logograms “弁, 示, 卞” had been used in China for long time. The true meaning of “卞” is in the Jiaoshi Yilin (焦氏易林). He was righteous person punished badly. Western Zhou avoided the meaning righteous high officer “卞” to his cap “弁” made of young lamb skin.
Decree from emperor Taizong of Tang(克高麗白巖城詔) conformed the location of Byeon-Jin(弁辰傳) as the southwestern region of Manchuria .
Chen Shou meant the Hahns (汗人, 汗國, 韓人, 倭)who had been living in the He-river (海河)watershed area spread out from the Tian-Jin port to the East, North, and Western shore of the sea, namely the Sea of Hahns(翰海 瀚海) to Taiwan and Okinawa Islands.
삼한(三韓)의 이름자에 얽힌 사연들:
진수가 만들고 사용한 글자는 모호한 곳이 많아 풀이가 다양하다. 그가 남긴 한유삼종(有三種) 이란 문구가 삼한의 어원이다. 삼종이라 하여 나타난 삼한(三韓)이란 처음부터 글자 표기에 혼란이 많았다. 고, 광무제가 바꾸었다
강희자전에 따르면, 삼한(三韓)의 이름자(辰韓,示韓,馬韓)를 (글자 속에 잠긴 지역의 한계를 바꾸려고) 후한 광무제 (漢光武) 때에 다른 글자로 바꾸었다는 사료가 있다 . 앞에 인용한 후한서 동이전을 보라고 했다 . 꼬까리 변(弁)자를 음과 뜻이 비슷한 법 변(卞)자로 바꾸었다 . 변한 (弁韓)이란 글자를 오직 한국에서 만이 변한 (卞韓)이라고 기록 했다.
이렇게 글자 풀이를 추적하면 삼한의 어원이 나타난다.
Byeon-hahn 弁韓, 卞韓 Shee-hahn示韓은 모두 법 변(卞)자는 이아 설문해자등 자서(字書)와 주역 주례(周易. 周禮)에는 없다. 초씨역림에는 두 글자를 “羔羊皮弁, 非卞氏”다른 뜻으로 썼다. 비변씨보(非卞氏寶)란 문구가 있다. 굴욕을 당하고 아무런 소득이 없다고 했다 . 주족은 빛을 숭상하던 비변씨 (非卞氏)를 삭제했다. 시경과 주례에는 꼬까리 변(弁: 冠弁,弁師)으로 실렸다. 이 두 글자는 각종 선진문헌에 나타난 글자다. 세 글자(弁, 卞, 示韓)는 모두 중원에서 써오던 글자로 같은 이름이다 . 진수는 서주시절에 바꾸었던 글자를 사용하여 [弁辰韓]이란 편명이름을 만들었다.
진수가 남긴 관직명에서도 추적 된다:
삼국지 한전과 변진전에 여러 작은 별읍(別邑)이 있고 각각 거수(渠帥)가 존재하는데 큰 것은 신지(臣智)라 하고 그 다음은 험측(險側), 그 다음은 번예(樊濊)가 있다 . 옛적에 거괴(渠魁)라 하던 거수(渠帥)와 신지(臣智)란 관명이 옛부터 삼국시대 이후에까지 중원에도 있었다 . 신라와 고구려 초기 본기에는 예맥거수(濊貊渠帥, 貊渠帥)란 글자가 있다 . 통전에는 변방 동이 진한과 변진(辰韓, 弁辰)편에 같은 관명이 실렸다. 동이의 영역이 서언왕 (徐偃王)이 다스리던 중국 해안선에 퍼져 아홉 종류가 있다고 했다 . 동이들이 한해의 동북서 해안에 살았다는 뜻이다.
삼한의 한 부류가 종국 동해안에 살았다는 증거가 여러 곳에 있다.
대만을 동이가 사는 섬이라 이주(夷洲)라고 했다. 그곳 사람들은 진시황이 방사 서복(方士徐福)의 말을 듣고 불사초를 찾아 찾아 오라고 젊은이 수천명을 발해만에서 떠네 보냈다는 사람들의 후손이라 했다.
발해만 동남쪽 연안에 나타났던 창해군 (滄海之郡)이 2년후에 사라젔다.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는 증거다.
동오의 손권이 고구려와 공모하여 조위를 치려고 사신을 보냈다. 고구려와 동오의 사신은 해상로를 관장하던 대륙백제 사람들이었다. 후에는 강동에 살던 부족이 중원의 옥쇄를 잡아 북제를 건국 했다.
명나라때 편찬된 욱리자(郁離子)에는 삼한부여(三韓扶餘)라 했다 . 이조 후기 이규경(李圭景)의 삼한시말 변증설(三韓始末辨證說)에는 고연무의 일지록 내용을 인용하여 고구려 부여 한예(駒麗、扶餘、馯、貊之屬)가 모두 해동제리라 했다 . 후에는 일지록(日知錄)에 삼한이 한반도 남쪽과 구주열도에 살고있다고 했다. 중원 해안에서 한해의 동남쪽 도서에 흐터져 살았다는 뜻이다.
진수는 천진 당산 일대에서 중국 본토 해안에 있던 고조선의 후예들은 무시하고 한반도와 만주영역을 삼한 땅으로 묘사 했다. 변한을 뜻한 시한“弁韓.示韓”은 다같이 일월성 삼신에 예식을 치루던 한(韓) 이란 뜻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고려사절요등 한국기록에만 나타나는 변한 (卞韓)이 옳은 표기다 . 삼한이란 낱말은 한해 (翰海 瀚海)동북서 세 해안에 韓이 살았다는 뜻이다.
끝. January 3, 2020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