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eenshot-11: 白衣民族의 시원지-2
동쪽으로 백의민족은 역사를 도둑 맞았다:
백의 민족의 선조는 밝은 빛(日月星, 三辰)을 따라 동쪽으로 왔다. 불을 다루는 사람을 화정려 (火正黎), 려는 [흐어/히;黎, 黑也]라고 했다. 서쪽에서 부터 동쪽으로 온 빛을 숭상하던 사람들이란 뜻이 히다 검다 하는 흑 백 (白-西方色. 黑hè: 北方色)이란 글자 속에 있다. 그들이 도자기를 만들 때에 세겨 넣은 글자를 도문(陶文)이라 한다. 동쪽으로 온 유목민(東夷)이 불길을 좀더 강하게 할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러다 보니 불 속에서 금속이 흘러 내렸다. 무쇠라고 한다. 무쇠는 산화 작용으로 쉽게 부서져 이를 잃어 버린 금속(铁)이라ㅡ했다. 무쇠(铁)를 뜻한 글자(銕:字林云鐵名)에는 동이를 뜻한 이(夷) 자가 들어 있다. 동이의 한 부족장,백어가 배위로 뚜어 올라와서 서주 무왕을 도와 상 (商,殷) 나라를 정벌 했다 . 현존 상서에는 白魚를 총군 (塚君) 필(畢)이라고 했다. 그가 이괘를 받은 단공 (壇公)이다.
의형제란 뜻에서 만든 글자가 [畢云bì 비/빛,회/휘,白魚] 라고 발음 하던 글자와 설명이 묵자한고(墨子閒詁)에 있습니다 .
“備城門「銻」,疑當作「銕」,銕即夷也,與古文鐵字不同”
염철론에 당제추인(唐銻追人) 이란 문구에 초기 글자 만든 사연과 내용이 있습니다 . 당숙우가 추격하여 잡은 사람이 조탁 각화완(雕琢,刻畫玩)이란 문구가 글자를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산서성에 살던 원주민을 추격해서 잡혀온 사람들이 글자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시경 문왕지습(詩經 文王之什 棫樸)에 추탁그장 금옥그상(追琢其章,金玉其相)이라고 실려있습니다. 같은 시문을 순자에는 [雕琢其章,金玉其相]라 했서요
쫓아가서 잡은 돼지(琢: 治玉也.원주민)에 족쇄를 체워 그들이 옥을 다루어 만든 문장. 금과 옥에 그러한 행위가 서주말 주선왕이 화친맹약 을 맺은 시경 한혁 (韓奕)에 왕석한후 그추그맥(王錫韓侯、 其追其貊)하여 엄수북국 인이그백 (奄受北國、因以其伯)이라, (끝을 알수 없는)북국의 통치자가 되어 달라고 부탁 했습니다.
조탁 각화완(雕琢,刻畫玩)이란 현상이 남만주에도 있었다는 증거가 보입니다. 동방삭의 신이경(東方朔·神異經)에는 부여의 시조 동명왕이 살던곳을 묘사 했다. 동명산 (東明山)에는 거대한 궁이 있다. 오색 그림이 그려진 푸른 옥돌로 담장을 만들 었고 (畫以五色, 青石為墻),다섯키가 넘는 높은 문에는 은으로 만든 방에 청석벽루(青石碧鏤)가 붙어 있었다. 그러한 옥돌에 새긴 귀한 조탁(雕琢)물을 사마중달(司馬仲達: 179~251년)이 공손연 (公孫淵, ? ~ 238년)을 토벌하고 오늘의 요양(遼陽.襄平城)에서 탈취해, 보잘것 없던 조위명제(魏 明皇帝 曹叡, 205년-239년) 의 궁실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
산서성에 살던 우리(嵎夷)가 단단한 여러 물체에 글자를 만들어 남겼습니다 . 형 안백이 상구에서 큰 불을 담당하는 자가 되었고, 동생 실심(實沈)이 대하의 주인 참이 되어 그 후손이 제후국 진의 시조가 되는 당숙우(唐叔虞)라고 했습니다 . 산서성 사람들이 파손되 않을 귀중한 물건에 글자를 세겨 너어 이를 [金文 ‧ 古文 ‧ 石鼓文. 籀文 ‧ 鳥蟲書 ‧ 篆書]라고 합니다.
고조선의 발생지에 살던 사람들이 글자 출현 초기부터 육서 (六書.陸棲)원칙에 따라 여러 형태의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무왕과 의형제(銻) 같이 지냈던 사람이란 글자에서 본 바와 같이 당시의 역사적 사실이 그 지역에 들어 왔던 서주 초기 기록에 나타납니다. 의형제에게 만들어준 기념품에 세겨진 글자가 이괘(利簋)명문 입니다. 의형제를 무왕의 후손이 배신 했습니다. 원주민을 학살하고 서주의 지도체제를 확립했다하여 성강지치라 합니다. 그당시 사건들이 시경에 많이 나타납니다. 시문이 시경 사간 (詩經 斯干)이 한 본보기 입니다. 상서군아 (周書 君牙)는 원주민 지도자로 그의 선조들은 서주 창립시기 부터 주왕실(亦惟先正之臣)을 도와 주었다. 초씨역림을 보면, 목천자와 화친 맹약 (歸妹)을 했습니다 . 그가 시경 시부(詩經 祈父之什 祈父)을 남겼습니다. 그는 여러 시문을 남겼습니다.
시부가 자신을 왕의 발톱과 송곳이 라고 했습니다. 원주민이 읊은 시문이라 한글 어순입니다. 한씨외전에 따르면 원문의 끝에 글자를 《詩》曰:「有母之尸雍。」로 바꾸었다.
현존하는 詩經 -> 小雅 -> 祈父之什 -> 祈父
祈父、予王之爪牙。
胡轉予于恤、靡所止居
祈父、予王之爪士。
胡轉予于恤、靡所底止
祈父、亶不聰。
胡轉予于恤、有母之尸饔.
기/시부, 나는 왕의 친우병 지도자다.
(북쪽으로는)호의 영역을 돌며 갖은 고생 다 하고, 모해 (말갈)사람들이 사는 집에 머무렀다.
기부, 나는 왕의 친우병 지도자다.
(북쪽으로는)호의 영역을 돌며 갖은 고생 다 하고, 모해 (말갈)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까지 이르렀다.
기부 단이 불총하여, 호의 땅을 돌며 나 온갗 고생 다하다,
(돌아와 보니 모두들) 어머니의 시신을 껴안고 있구나.
시부가 목천자와 같이 서역을 다녀와 읊은 시문 입니다.
목천자전은 소설이 아니라 값진 역사 기록입니다. 시부에 관한 풀이가 일주서, 춘추좌전등 여러 고전에 다양하게 나옵니다.
목천자 일행은 옛 전선에 따라 곤륜(昆侖)을 찾으려고 북쪽으로 올라 갔습니다. 그 곳에서 알아 보니 모두들 곤륜이 서쪽에 있는 왕이라 했습니다. 하여 방향을 바꾸어 천산 북로를 따라 목적지에 이르러 서왕모 즉 곤륜(High priest who has moral authority)을 만나 보고 돌아 왔습니다. 후에 한무제가 보냈던 장건(張騫, ? ~ 기원전 114년)은 흉노에게 쫒겨 천산 남로를 따라 서역을 다녀와 사마천은 우본기(禹本紀)가 거짓이라고 했습니다 . 그가 우본기(禹本紀)에 실렸다는 여러 명사 (河出崑崙.醴泉,瑤池)를 다른 사람들도 인용 했습니다.전한기에는 우본기와 산해경의 내용을 고려해야(禹本紀山經有所考焉) 된다고 했다. 햇님의 후손이라 자칭하던 사람들이 세운 위나라의 역사서(蓋魏國之史書. 懷舊志. 費氏經) 내용을 사마천 이전부터 중원의 지식인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단군왕검의 혈통과 시원지가 적혀 있던 기록을 당대의 사가 사마천과 석학들이 판독 했습니다.
단군왕검이 세운 고조선 부터가 한국역사의 시작입니다. 공자가 고조선역사를 취해서 (丘竊取之) 춘추좌전을 만들었다. 또는 반고가 도둑했다 (班固盜竊父史)지만, 그게 아니라 서주 초기부터 계획적으로 우리 역사를 훔쳐다 감추고 발견되지 않도록 온갓 수단과 방법을 다했습니다.
끝 다음에 계속.
September 22, 2019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