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eenshot-12-16: 지도 설명-3: 진홍색 강(絳)자:
실사 변의 강(絳)자의 어근이 되는 강(夅:jiàng: 夅:服也)이라고 읽던 글자는 마을 부(阝,阜)변이 없으나 있스나 뜻이 같다 (降:〔古文〕夅.)고 했다.
상서 우공편에 북으로 강(洚.洪. 降.浲)수를 지나 대륙(大陸)에 이르렀다는 진의대륙 (晉之大陸)으로 부터 분수를 따라 내려온 사람들이 치수사업을 하던 곳이다. 공공이 치우와 싸웠다 했고, 산해경에는 우가 공격한 공공국산 있다(禹攻共工國山)라 했다.
옥편에는 [강이 거성으로 옳은 발음이였다]풀이하여[下xià也 夏.荷.何 落 諾 洛이다. 돌아 (歸 鬼, 龜)왔다는 등등] 여러 동음이자로 바꾸어 사용했다. 씨애(Xià)란 어음을 “㙤. 暇. 廈”자 로 바꾸는 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글자로 기록 했다. 이곳에서 [洪水, 공공이 白民, 北狄, 개적] 하는 이름이 나온다.
곽태산(霍太山) 서북쪽을 지나 분수(汾水)에 이어지는 진홍색 강 (絳: jiàng/ gong3/ gàng)자]에 많은 사연이 잠겼다 . 시대와 장소에 따라 강(江, 姜, 降) 공(工也. 𠀤古巷切,音降) 홍(鴻, 洪)등 여러 음으로 읽었다 . 뜻 또한 다양 하다. 그 곳이 진의 수도 였다. 평양 강읍현(絳,晉所都也,今平陽絳邑縣)이라 했다. 수경주에 나오는 강수(降水)다 . 내려 왔다. 항복했다. 큰 붉은 색(大赤也) 이다. 붉을 적(赤)자를 음과 뜻을 뒤섞어 흉노땅 원주민을 북적 (北狄), 백적(白狄), 백작(白翟), 개/해적(蓋狄), 적인(狄人) 이라는 등 여러 이름으로 기록 했다. 그들이 서주의 시조가 되는 고공단부 (大王亶父居邠,狄人攻之)를 공격 했다.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이 흰색 옷을 입어(因穿白色衣服) 백적(白狄) 이라고 했다 . 그 곳 흉노족 풍속에 최고의 지도자를 천자라 했다 .
여씨춘추와 회남자에 천자의 백의(天子衣白衣)라는 문구가 있다. 천자의 후손들이 흰색을 숭상하여 힌옷을 입었다 . 그 사람들이 남만주와 한반도에 살던 백의민족(白衣民族)이다. 부여전에 항상 흰옷(衣尚白)을 숭상하고 팔 소매가 넓은 도포를 었다 .
삼국사기와 책부원귀冊府元龜)에는 고구려 관직에 힌옷을 상징한 비단 백자 백의선인(帛衣先人)과 예속선인(翳屬仙人)이 있었다. 중국에서 올린 삼국사기에는“●衣.●屬”로 두자를 숨겼다 . 예(翳)자는 활잘 쏘는 사람 백익을 뜻한 글자다. 그가 전설에 나오는 항아 (姮娥)의 남편이다. 활로 9개의 해를 쏘아 떨어 뜨리고 하나만 남겼다는 예(羿: 翳焉 翳鳥)다 .
같은 내용을 최근에 중국에서 올린 삼국사기에는 백의선인 (帛衣先人)을 조의선인(皂衣仙人)으로 바꾸었다 . 조의(皂衣)란 글자에는 [짧은 칼을 지닌 사람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겠다 고 결심한 사람]이란 뜻이 있다. 옛부터 전해오던 백의선인 (帛衣先人)이 후에 이조시대에 나타난 승병과 백의종군이다.
그들이 흰색 옷을 입어(因穿白色衣服) 백적(白狄)이 살던 곳이 분수 강수 계곡이다. 후토(后土)구룡(勾龍)의 후손으로 알려진 공공(龔工,共工)이 치수사업을 하던 곳이다 . 공공이 실패 하여 순임금이 귀양 보냈던 유주 숭산 삼위 하던 곳이다. 舜流共工于幽州,放驩兜于崇山,殺三苗于三危,殛鯀于羽山]
한무제가 분수 북쪽에서 보정(漢武帝獲寶鼎于汾陰)을 얻었다.
단군설화에 나오는 위(危)자는 사음자다. 설문해자에는 태위야 (殆:危也)라 했다. 시경위풍에 나오는 올라가기 어려운 성벽 “乘彼垝垣” 을 뜻한 글자라 했다 . 이를 설명한 문구가 왕험성 (王險城)이다. 험(險)자는 모든 사람들(僉)이 뽑은 지도자 검(儉) 이 사는 곳을 뜻한 글자다. 중국 고전을 살펴 보면 위(危) 자와 험(險)자는 단군왕검 백익을 뜻한 글자로 쓰이기도 했다 .
분수가 황하를만나는 곳에 빛 경(耿)자가 보인다. 산해경 상서 시경에도 나온다. 시경 부풍 백주에 실린 글자다 . 같은 글자를 바꾸어 (不出于熲)란 시귀도 보인다. 옛적에는 그곳을 배를 타고 다녔다고 본다. 그곳이 평양 피씨 (平陽皮)의 본향이라 한다 . 고구려에 비씨가 있었다는 마을이라 본다. 평양(平陽)이 그 일대에 있었다고 본다.
왕궁(王宮)남쪽에 안읍이 보인다. 당태종의 진서(唐太宗 晉書) 에는 안읍 (운성시) 옛적 순임금의 도읍지 (安邑舊舜都)라 했다 . 해지(解池)가 좁아 진듯하다. 순임근으로 부터 사제권을 위임 받은 백익이 안읍(安邑)에 도읍을 정하고 편양(平壤)이라 했다.
공공과 우의 아버지 곤(鯀)은 모두 북쪽에서 분수를 따라 내려온 전욱고양씨 (帝顓頊高陽氏)의 후손이다.
끝. 다음에 계속
October 2, 2019
치수 사업을 하던구주의 영역과 이름 변천이 통전 군주서(通典 州郡序)에 있다.
至堯遭洪水,而天下分絕,使禹平水土,還為九州,如舊制也。舜攝帝位,分為十二州,雍、荊、荊河、梁、冀、幽、并、青、營、徐、兗、揚。故虞書云「肇十有二州」,是也
夏氏革命,又為九州。塗山之會,亦云萬國,四百年間,遞相兼并。殷湯受命,其能存者三千餘國,亦為九州,分統天下。冀、荊、荊河、雍、揚、兗、徐、幽、營。營,則禹貢青州也。載祀六百。及乎周初,尚有千八百國。而分天下為九畿:方千里曰王畿,其外曰侯畿,亦曰服。又外曰甸畿,又外曰男畿,又外曰采畿,又外曰衛畿,又外曰蠻畿,又外曰夷畿,要服也。又外曰鎮畿,又外曰藩畿。荒服也。自侯、甸、男、采、衛、蠻、夷、鎮、藩,即九畿也,各相去五百里為限也。至成王時,亦曰九州,屬職方氏。揚荊荊河青兗雍幽冀并。其後諸侯相并,有千二百國。及平王東遷,迄獲麟之末,二百四十二年間,諸侯征伐,更相吞滅,不可勝數,而見於春秋經、傳者,百有七十國焉。百三十九國知土地所在,三十一國不知其處也。蠻夷戎狄,不在其數。逮乎下分地理,上配天象,所定躔次,總標十三。及周之末,唯有七國。秦昭王時,西周盡獻其地,邑三十六,口三萬,受獻而歸其人。至莊襄王滅東西之二國,七城而已
漢興,以秦地太大,更加置郡國。其後開越攘胡,土宇彌廣,改雍曰涼,梁曰益,又置徐州,復禹舊號,置交,初為交趾,後為交州。北有朔方,初為朔方,後為并州。凡為十三州部刺史。司隸、并、荊、兗、荊河、揚、冀、幽、青、徐、益、交、涼。而不常所理。至哀、平之際,凡新置郡、國六十三焉,與秦四十,合百三。縣邑千三百一十四,道三十二,侯國二百四十一。地東西九千三百二里,南北萬三千三百六十八里,此漢之極盛也。
Wiki 자치통감 설명 참조:
《자치통감》(資治通鑑)은 북송의 사마광이 지은 중국의 역사책이다. 1065년에 영종의 명을 받들어 사마광이 짓기 시작하였다. 1084년 11월에 완성되었으며, 처음 이름은 《통지》(通志)였으나 신종에 의해 《자치통감》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 역사서는 《통감》(通鑑)이라 줄여부르기도 한다. 편년체 형식으로 주나라의 위열왕이 진(晉)나라의 3경을 제후로 인정한 기원전 403년부터 오대 십국 시대의 후주의 세종 때인 959년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를 1년씩 묶어서 편찬한 것이다. 고대 중국 16개조 1362년의 역사를 다루었으며 모두 16기(紀) 294권이다.
이 책은 왕조 시대에는 사마광의 명망과 더불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후술하겠지만 실제 정치를 실시하는 데 있어 참고하고 보조로 삼아야 할 책으로 제작된 목적도 있어 《정관정요》 등과 함께 대표적인 제왕학 서적으로 여겨져 왔다. 또한 지금은 산일되고 없는 사마광 당시까지 전해지던 사료를 적지 않게 수록했기에 유력한 사료라고 주목받는다. 한국의 역사 연구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Retired physician from GWU and Georgetown University in 2010 2011: First Book in Korean "뿌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he Root" 2013: Ancient History of the Manchuria. Redefining the Past. 2015: Ancient History of Korea. Mystery Unveiled.